최근 조선의 21대 임금 영조와 그의 아들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비밀의 문’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MBC ‘동이’, ‘이산’, SBS ‘무사백동수’ 등 그동안 TV 사극에서 영조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이 그려졌다. TV 사극이 가장 많이 다룬 임금 영조. 500년 조선의 역사 속에서 가장 장수하였으며 또한 가장 오랜 기간 왕위에 있었던 왕이다. 그만큼 그의 삶과 업적은 다른 왕들에 비해 드라마틱하고 흥미진진한데…. 지금부터 국사책에는 나오지 않는 역사 속, 영조의 숨은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국민 약골 영조, 장수의 비결은 인삼?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 환갑을 넘긴 왕은 6명이 전부이다. 조선시대 평균 수명이 35세 정도였던 것을 보면 분명 왕들은 그보다 10년 이상 오래 살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장수한 왕, 바로 영조다. 무려 83세까지 장수한 영조는 때부터 죽을 때까지 약을 달고 산 소문난 약골이었다고 한다. 소화기능이 특히 좋지 않았으며 전염병 같은 큰 병에서부터 배탈, 감기, 두통 등 가벼운 질환까지 늘 달고 살았다. 그랬던 그가 83세 까지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인삼’이다. 말년 10년 동안 복용한 인삼이 100근이나 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인삼 사랑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다. 평생을 매일 30g의 인삼을 복용했으며 한약 중에서도 인삼이 가장 많이 포함된 건공탕을 오랜 시간 즐긴 영조. 영조 스스로도 “인삼의 정기를 얻어 건강하다”고 말할 정도로 대단한 인삼 애호가, 인삼 마니아라고 할 수 있다.
알고보면 콤플렉스 덩어리, 영조
숙종의 둘째 아들 영조는 후궁의 소생이다.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의 출신 때문에 영조는 어린 시절 대궐 내에서 알게 모르게 무시를 많이 당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로라하는 명문가 출신의 신하들 사이에서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출신 때문에 생긴 영조의 콤플렉스는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히는데 이에 얽힌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영조가 연잉군이었던 시절, 훗날의 정성왕후를 아내로 맞아 첫날밤을 치를 때의 일이다. 영조는 아내의 손을 잡고 “손이 참으로 곱다.”면서 칭찬했는데 이에 부인은 “귀하게 자라서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별 의미없는 평범한 대답이었지만 영조는 이를 자신의 출신을 비웃은 것이라 여겼고 정성왕후는 그날로 소박을 맞기에 이른다. 무수리로 고생하며 항상 손과 발이 거칠었던 어머니 숙빈 최씨 생각에 단단히 화가 난 것이다. 이후 영조는 정성왕후를 멀리하고 후궁들만 찾았는데 정성왕후는 66세가 되어 죽을 때까지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자식을 단 한명도 낳지 못한 비련의 왕후로 남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지나친 아들 사랑이 낳은 비극, 영조와 사도세자
흔히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매정한 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영조의 아들 사랑은 남들이 보기에 팔불출에 가까울 정도로 대단했다고 한다. 강력한 왕권으로 조선 후기 중흥기를 이끈 왕이었지만 후사를 얻지 못해 오랜 시간 불안과 걱정에 사로잡혀 있었던 영조. 사도세자는 영조가 마흔 한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얻은 귀한 아들로 첫째 아들이 죽은 후 7년 만에 얻은 그야말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애틋한 아들이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탄생이 얼마나 기뻤는지 1살 되던 해 세자에 책봉하는 무리수까지 두게 된다. 어릴 때부터 무척 총명했지만 영조의 기대와 달리 문예보다는 무예에 더 큰 관심을 가졌던 사도세자. 아들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자신의 바람과는 다른 행적을 보이는 사도세자에게 영조는 크게 분노하며 아들을 끊임없이 질책하기에 이른다. 이에 사도세자는 요즘 사춘기 청소년들처럼 아버지를 싫어하게 되고 피하게 된 것이다. 끝내는 사도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이 난 영조와 아들 사도세자의 인연. 아들에 대한 지나친 사랑과 기대, 그리고 집착이 낳은 슬픈 결과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