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 품은 3월 봄비의 비밀은?
빗방울의 마법 ‘에어로졸’

 

긴 겨울의 끝을 알리는 봄비 소식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꽁꽁 얼어붙은 듯했던 세상을 촉촉하게 적시는 빗방울과 함께 은은하게 풍겨오는 비 냄새를 기억하는가? MIT에 근무하는 재미(在美) 한국인 과학자 정영수 박사가 최근 세계적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비 고유의 향기는 빗방울이 지표에 닿는 순간 발생하는 미세한 액체 입자, 에어로졸(aerosol) 덕분이라는 것. 싱그러운 3월의 봄날, 빗방울과 함께 느껴지는 좋은 냄새의 신비로운 비밀 엿보기, 그리고 봄비에 얽힌 다양한 기억들을 떠올려보자.

 

 

팝송과 가요를 막론하고, 세상에 무수히 많은 노래 중에는 유난히 ‘비’와 관련된 곡들이 많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별 비를 통해 느끼는 감성 또한 저마다 색깔을 달리하는 탓에 노래 속 비가 내리는 계절도 중요하다. 어쨌든 때는 바야흐로 3월,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니 만큼 봄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봄’과 ‘비’, 단지 한글 자음의 6번째 글자로 만들어진 단어라는 점 외에 딱히 이렇다 하게 맺히는 구석이 없는 이 두 단어가 합쳐질 때, 묘한 반전과 함께 전혀 새로운 느낌이 생겨난다. ‘봄비’, 속으로 되뇔 때보다 소리 내어 말할 때 비로소 더 와 닿는 이 느낌은 대체 뭘까? 아련한 설렘, 그리고 각자의 기억 속에 떠오르는 각자의 추억들…. 너와 나의 추억이 전혀 다른 공간 다른 시점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듯하지만, 사실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각각의 추억 속에 누구에게나 공통된 기억들, 바로 강렬한 비 냄새의 기억 덕분이다. 캠퍼스에 물감이 번지듯, 물감 통에 색깔이 번지듯 세상을 서서히 적시는 봄비와 함께 솟아오르는 비 냄새. 어떤 이는 먼지 냄새라고도 하고 어떤 이는 흙냄새라고도 하지만, 정작 어느 누구도 그 냄새의 정확한 정체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가 세상을 적시는 것만큼 비 냄새는, 특히 봄날 촉촉하게 내리는 비의 냄새는 주변을 순식간에 바꿔놓을 정도로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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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에어로졸을 느껴왔다

 

우리에게 익숙한 비 냄새의 성분은 빗방울이 땅에 닿는 순간 발생한다. 보기에는 특별한 것이 없는 땅이지만 사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땅은 미세한 구멍들이 나 있는 다공성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땅과 빗방울이 서로 닿는 순간 화학작용이 이뤄지며 발생하는 미세한 입자가 바로 ‘에어로졸’이다. 최근 공개된 미국 MIT 연구진의 동영상을 보면 빗방울이 땅과 닿는 순간 미세한 기포가 생겨나며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쉬운 예로 샴페인 마개를 뽑았을 때 거품과 함께 그 향기가 퍼지는 현상과 같은 이치인 셈이다. 에어로졸의 성분은 땅 속 식물성 기름 혹은 박테리아 분비 물질이라고 한다. 사실 이러한 비 냄새의 현상은 이미 1964년 과학저널 <네이처>에서 ‘페트리코(Petrchor)’라 명명되기도 했다. 그 경로가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전해지다가 최근 MIT의 연구에서 밝혀진 셈이다. 딱딱한 연구 결과는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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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과 땅이 만나 만들어 내는 에어로졸 생성의 과정, 듣고 보니 흡사 사랑이 시작될 때와 비슷하지 않은가? 남자와 여자가 만나 서로의 몸 속 호르몬이 작용을 하고 ‘콩깍지가 씌었다’ 할 정도로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바로 그 순간 말이다. 비가 오는 순간 우리는 설렘 혹은 상쾌함을 느끼고, 따뜻한 차 한 잔, 잔잔한 음악, 누군가와의 진솔한 대화가 그리워진다. 물론 그 모든 끌림이 비가 만들어 내는 에어로졸 때문이라 단정 짓는 것은 아직 섣부른 결론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전부터 에어로졸의 마법을 직간접적으로 느껴왔다는 사실만은 수긍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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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확산을 밝히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조금 재미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이야기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MIT의 연구가 단순히 비 냄새의 주인공인 에어로졸의 발생 과정을 밝혀내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에어로졸의 발견으로 인해 질병의 확산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이다. 실제 재미 한국인 과학자 정영수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비가 온 뒤 나는 냄새가 지표면 물질이 대기를 통해 인간에게 전달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라며 “전달 경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찾는다면 대기 중에 포함된 지표 물질의 발생 지점과 경로를 파악할 수 있고, 이를 통해 흙을 기반으로 전달되는 병원균의 오염 지역과 전염 위험 지역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제까지 에어로졸은 대개 바다 표면에서 거품이 터지며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즉, MIT의 연구 성과는 빗방울에 의해 지표면에서 일어나는 에어로졸 생성을 처음으로 직접 관찰했다는 것이며, 이는 이제까지 알려진 질병의 경로를 더욱 명확하게 밝혀낼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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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튜브

 

 

하지만 이번 실험은 시표 흙에 섞인 염료가 에어로졸에 담겨 퍼지는 현상이 관찰된 것으로 초기 단계에 불과하다. 빗방울이 품은 비밀은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은 셈이다. 빗방울이 감춘 비밀이 어찌됐든 3월의 봄비는 여전히 기다려진다. 지금 봄비가 창가를 두드린다면, 잠시라도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기왕이면 싱그러운 숲이 있는 곳으로 향할 것을 추천한다. 아는 만큼 달리보이는 법, 사방으로 비산하는 에어로졸을 온몸으로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