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 산책은 예상 외로 우리에게 많은 의미들을 전해 준다. 아기자기한 벽화가 그려진 거리, 독특한 공방이 돋보이는 거리, 동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벌어지는 벼룩시장 등 지역마다 풍기는 특색과 분위기가 참 다르다. 추석이 있어 마음도 몸도 풍요로운 9월의 <골목투어>로는 어디가 좋을까? 9월에 걷기 좋은 골목길은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새롭게 깨어나고 있는 ‘성수동 수제화거리’로 정했다.
성수동 수제화거리라고 하면 왠지 세련되고 화려할 것만 같다. 물론 이곳에서 디자인되고 만들어지는 구두들은 그렇다. 하지만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느낌처럼 세련된 곳은 아니다. 이곳을 걷다 보면 구두를 만드는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다. 또 유난히 오토바이와 자전거가 많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게 된다. 패션은 화려하지만 패션을 만드는 사람들은 쉴 틈 없이 바쁘고 치열한 것이다.
성수동은 어쩌다 수제화거리가 되었나
성수동은 수제화 관련 제조업체들이 집약된 수제화 산업지역이다. 성수동에는 현재 350여개 넘는 수제화 완제품 생산업체와 100여개의 중간 가공·원부자재 유통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국내 수제화 제조업체의 약 70% 이상이 밀집된 곳이다.
성수동이 ‘수제화거리’라 불리게 된 것은 단지 이곳에 구두 제조 관련 업체들이 많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구두의 디자인과 개발, 출고, 판매에 이르는 모든 시스템이 성수동에서는 체계적이고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다.
구두장인, 성수동으로 삶의 터전 옮기다
구두하면 지금은 성수동이지만, 과거에는 쇼핑의 거리 명동이었다. 1970~80년대 명동에는 소위 ‘싸롱화’로 명성을 날리던 구두점들이 많았다. 1974년 서울시 기준으로 자장면이 50원하던 시절, 남자 수제화는 1만 4천 원, 여화는 9천원 정도했다고 한다. 1979년 명동에서는 7만 원대의 구두들도 있었다.
성수동이 구두 장인들에게 삶의 터전이 된 것은 1990년대 외환위기가 시작된 시기부터다. 이 시기 제화산업이 어려워지자 구두공장들은 성수동으로 대거 이동했다. 시간이 흘러 성수동에는 버려진 창고와 상가 등이 생겨났다. 쓰다가 버려진 공간이 많아서였을까. 성수역을 방문할 때면 늘 어두컴컴한 회색이 연상되었다.
도시재생, 문화예술 복합공간
오래된 창고와 낙후된 제조업체가 밀집된 잿빛 거리였던 성수동. 최근 들어 이 거리에도 예쁜 색깔들이 입혀지기 시작했다. 철거와 재개발 대신 기존 건물과 거리를 되살리는 ‘도시 재생’ 공간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이곳은 패션쇼나 파티장 등 색다른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림창고’이다. 문화예술 복합공간인 대림창고는 본래 1970년대 초에 지어진 정미소였다. 1990년부터는 물건 보관용 창고로 사용되었다. 패션 행사가 성대하게 열리기 시작하면서 대림창고는 유명해졌다. 대림창고는 그냥 ‘창고’에서 ‘핫 플레이스’로 거듭났다. 2013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성수동에는 ‘수제화산업 활성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구두테마역인 슈스팟 성수, 수제화공동매장(from SS)도 공동 개관됐다.
성수역에 마련 된 ‘슈스판 성수’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내리면 ‘슈스팟 성수(shoe spot sungsu)’를 바로 만나 볼 수 있다. 역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가면 구두박물관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잘 꾸며 놓았다. 구두테마전시공간과 구두지움, 슈다츠, 구두장인공방 등 구두에 대한 이야기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성수역은 곳곳에 구두와 관련된 그림으로 가득하다. 원자재, 부자재들로 두드리고 꿰매고 깎는 구두장인들의 모습을 하나의 그래픽으로 표현해 보는 재미가 있다.
성수동 수제화거리는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서울성수수제화타운, 수제화공동판매장, 수제화교육장 등 볼거리, 느낄 거리, 배울 거리로 가득하다. 성수동은 ‘구두’라는 하나의 매개체가 문화와 예술, 패션산업을 엮는 연결고리 기능을 하고 있다. 당신의 삶이 힘들다고 생각된다면, 편한 단화를 신고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찾아가 보시라.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틈에 섞여 있다 보면 복잡했던 머리가 단조로워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무언가가 느껴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