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채로운 단풍색의 비밀을 품고
가을 산을 오르다

 

초록의 나무들이 일제히 화려해지는 계절. 저마다의 나무들은 형형색색 서서히 변하더니 어느 순간 온 산천을 물들인다.

‘아무리 꽃이 예뻐도 떨어지면 아무도 주워 가지 않지만, 가을에 잘 물든 단풍은 책 속에 고이 꽂아서 오래 보관도 합니다’

법륜스님의 <인생수업>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 순간에 지는 꽃보단, 세월을 아름답게 물들이는 인생이 더 값지다는 의미가 아닐까. 우리의 삶과도 절묘하게 닮은 나뭇잎의 일생을 되짚어 본다.

 

 

흙에서 와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얼음이 녹고 땅에 온기가 돌면, 나무는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한다. 얼었던 대지에선 겨우내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나무. 그간의 허기를 해소라도 하듯, 대지의 수분과 양분을 쉴 새 없이 빨아들인다. 뿌리에서 빨아들인 수분과 양분은 4월 초가 되면 높다란 가지까지 전달되는데, 이때 수줍은 크기의 나뭇잎 탄생은 화창한 봄을 예고한다. 5월이 되면 나뭇잎은 어느새 무성해지는 시기이다.

그러곤 6월이 되고, 본격적인 여름이 되면 그 수많은 나뭇잎들은 강렬한 태양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다. 나뭇잎 인생에서 희로애락을 차례로 거쳐야 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태양 뿐 아니라 비에도 맞서고, 바람에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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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9월이 되면 그 왕성했던 나뭇잎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춘 채, 조금은 시들시들 쳐져 보이기까지 한다. 10월이 되면서는 낯빛이 변하기 시작한다. 그러곤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듯 자신의 온 몸을 붉게 물들이곤 산화할 태세를 갖춘다.

 

autumn park

 

11월이면 모든 나뭇잎은 자신의 일생을 다하곤 낙엽이란 이름으로 땅에 내려앉는다. 땅에 내려와서야 그간의 빚들을 청산한다. 여러 미생물들에 의해 분해된 낙엽은 이내 땅과 한 몸이 된다. 그러곤 자신에게 수많은 영양분을 내어준 나무뿌리에게 든든한 걸음이 되어준다.

 

 

변화의 시작은 기온이 절대적으로 작용

나뭇잎에는 초록색을 띠는 엽록소 물질이 있다. 이 엽록소는 햇빛을 받으면 물과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필요한 영양분을 만들어낸다. 봄과 여름에는 수분이 많고 햇빛이 강해 영양분을 많이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날씨가 추워지면 햇빛이 줄어들고 땅이 얼면서 그 역할을 다하기 힘들다. 더 이상 엽록소를 만들어내기 힘들 때, 나무는 월동준비를 한다. 에너지 소모를 줄이기 위해, 영양과 수분을 더 이상 나뭇잎에 보내지 않는 나무! 이를 위해 특별한 세포층을 만들어낸다. 이를 ‘떨켜’라고 하는데, 이 세포층이 만들어지면 나뭇잎엔 엽록소가 서서히 사라져, 고유의 색소들이 드러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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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색소는 크게 3가지로 나뉠 수 있다. 엽록소라고 부르는 녹색을 띤 클로로필, 붉은색의 안토시아닌, 노란색의 카로틴과 크산토필이다. 변화의 시작은 기온이 절대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햇빛과 수분도 한몫 거둔다. 기온이 0°c 가깝게 떨어지면, 녹색을 띠던 색소 클로로필이 분해를 한다. 이때 붉은 색소인 안토시아닌으로 바뀌면 붉은 단풍잎, 안토시안 색소를 생성하지 못하는 은행나무 등은 카로틴과 크산토필 색소에 따라 노란색으로 바뀐다.

 

fallen leaves

 

해마다 이맘때쯤, 뉴스에서는 일기 예보를 하듯이 단풍 시기를 알려준다. 이는 매년 기온과 습도, 자외선 등의 조건들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단풍 시기가 일찍 오는 해가 있고, 늦게 오는 해가 있다.

안타까운 건, 예정된 단풍 시기에 예년과 달리 기온이 높거나 갑자기 추워졌을 때이다. 우선 낮과 밤의 온도차가 커야 하나, 영하로 내려가면 안 된다. 하늘은 청명하고 일사량이 많아야 하고, 너무 건조하지도 않은 알맞은 습도를 유지해야만 아름다운 단풍을 기대할 수 있다. 또 갑자기 추워지거나 비가 오는 날씨에는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이 떨어지고, 너무 건조할 경우 단풍을 보기도 전에 잎이 타게 되어 맑은 단풍을 보기 어렵다.

 

 

수종마다 잎이 가지고 있는 색소의 종류

한편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2010년, 다채로운 단풍 색의 비밀을 안토시아닌으로 풀어냈다. 왕벚나무, 화살나무, 산철쭉을 대상으로 단풍 단계(6단계)별 잎 색소의 함량 변화를 측정한 것이다. 그 결과 수종별로 색소 함량 변화의 속도가 달랐으며, 공통적으론 엽록소가 카로티노이드계 색소보다 빠르게 파괴되면서 색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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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히 붉은 색의 안토시아닌 함량의 증가 정도가 단풍 색의 변화를 주도하였는데, 산철쭉은 초기부터 빠르게 합성되어 증가하였고 왕벚나무는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화살나무는 5단계에서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이처럼 단풍시기에 따른 다양한 색소함량의 변화가 다채로운 단풍 색을 결정하며, 수종마다 잎이 가지고 있는 색소의 종류와 함량이 다르기 때문에 특색 있는 단풍을 표현해 내는 것이다. 안토시아닌의 역할은 강한 햇빛으로 인한 세포 파괴를 일으키는 활성산소 생성을 억제시켜, 잎의 노화를 늦추는 것. 이 때문에 나무 한 그루에서도 나무 꼭대기나 빛이 잘 드는 쪽의 잎이 먼저 또는 더 붉게 단풍이 들게 된다.

 

Wide angle fall Aspen Trees

 

대표적인 단풍 색으로 수종을 구분하자면, 단풍나무와 신나무, 옻나무, 붉나무, 화살나무, 복자기, 담쟁이덩굴 등은 붉은 색 단풍으로 구분된다. 노란색은 은행나무를 비롯해 아까시나무, 피나무, 호도나무, 튜립나무, 생강나무, 자작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있다. 한편 단풍나무과의 고로쇠나무는 맑은 갈색을 나타낸다.

이밖에 감나무의 붉고 노란색이 섞여 있는 단풍은 한 단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다. 늦가을에 절정을 보이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나 너도밤나무의 노란 갈색은 가을다움을 표현하기에 적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