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한 기온에 힘입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 너무도 진부하고 빤한 이야기이지만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수확을 앞둔 들판의 곡식만큼 마음도 여유도 풍성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만연한 가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10월! 우리의 마음을 꼭꼭 채워줄 양식을 위해 오랜만에 서점을 찾았다. 그러곤 따뜻하게 품어주는 추천도서 다섯 권을 차례로 만나다.
01. 사부의 요리(이연복 저, 웅진지식하우스)
탁월한 내공으로 사랑받는 요리사, 이연복. 그의 등장으로 자장면, 짬뽕, 탕수육으로만 대변되던 ‘짱깨’ 음식은 일품 요리로 다시 각광받기 시작했다. 뚝심 있게 버틴 주방에서의 40년. 한눈 팔 새도 없이 삶이 곧 요리이자, 요리가 곧 삶인 길을 걸어온 그가 말하는 요리사의 길과 인생이란 어떤 것일까. 배달 소년으로 시작해 사보이 호텔, 대만대사관, 일본생활을 거쳐 한국에 다시 정착해 지금의 식당 ‘목란’을 운영한 지 17년. 파란만장한 지난날을 두고 그는 추억이라 말하기에는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직진 말고는 옆길도, 돌아갈 길도 없었다. 앞으로 쭉 걷다 보니 조금씩 인정도 받고 위치도 올라가고, 더 열심히 하게 됐던 것 같다.”
그는 중요한 건 방법이 아니라, 열심히,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한다. 잠 못 자고 고민하는 마음만 있다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자세만 갖추고 있다면 언젠가 잘하게 되는 날이 꼭 온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우리가 대가라고 부르는 이연복의 지금 위치는 ‘한 길만 꾸준히 걸어온 사람’ 만이 얻을 수 있는 보상이다.
뭐든지 그냥 얻어지는 것은 없다. 화려한 것의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고, 그 고된 시간을 견디지 않고서는 제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확실히 배울 수도, 기술을 완벽하게 익히기도 어렵다. 가야 할 길을 바르게 가는 마음, 속임수나 꼼수 없이 정직하게 하겠다는 신념. 이연복이 걸어온 길은 이러한 교훈을 진실하게 보여준다.
02.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상)(박문국 저, 소라주)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꾸준히 등장하면서 조선의 역사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TV 드라마나 영화는 그 특성상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상상력을 더하거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장치를 꾸밀 수밖에 없는데, 이 지점에서 역사를 잘못 받아들이거나 오인하는 경우를 왕왕 목격한다.
이 책은 카카오스토리 역사 부문 1위 채널 《5분 한국사 이야기》의 운영자, 박문국 저자가 쓴 책이다. 사료와 고증에 기반을 둔 역사 이야기를 매일 2건 이상 게재해왔고, 그 결과 채널을 오픈한 지 한 달 만에 20만 명의 구독자가 그의 글에 매료되었다. 현재는 그 수가 36만 명에 이른다 한다.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커지자, 더 정확한 고증을 위해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책과 논문을 살피고 관련 글을 올리는 데 집중한 저자. 대중들이 쉽고 정확하게 조선의 왕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자는 역사 연구자들의 저술과 논문을 철저히 비교 분석해 이 책에 담았다.
03.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앤서니 도어 저, 최세희 역, 민음사)
2015년 퓰리처상 수상작. 장님 소녀 마리로르와 고아 소년 베르너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겪는 10여 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아름다운 문체와 감동적인 플롯,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실감나는 묘사로 언론과 평단의 큰 주목을 받았으며, 수많은 미국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2014년 봄 출간 이후 2015년 현재까지 1년 넘게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 순위권을 지키며,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 10권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그 열광적인 반응을 뒷받침해 준다. 미국 내에서만 100만 부 넘게 판매되고 39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쾌거를 이루었으며, 지난 6월 ‘앤드루 카네기 메달 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 번 대중성과 문학성을 입증 받았다.
다채롭고 아름다운 언어와 눈앞에 그려지듯 생생한 묘사력, 빠른 전개와 흥미로운 스토리텔링까지 잠 못 이루는 가을밤에 한번쯤 밤 새워 읽어보면 어떨까.
04. 간호사라서 다행이야(김리연 저, 원더박스)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시대에 취업률이 높은 간호사는 전문직으로서 점점 더 인기가 올라가는 직종이다. 삼성서울병원에 입사하고, 2년 만에 대기업 병원을 박차고 나와 반짝이는 패션모델 세계의 문을 두드리고, 다시 삼성에 들어가 수술 보조 간호사로 2년간 고군분투, 그러는 와중에도 독하게 공부하며 미국행을 암중모색했다.
그리고 결국 꿈에 그리던 뉴욕에 입성해 2013년 취직에 성공, 현재 뉴욕에서도 손꼽히는 병원 마운트 사이나이 베스 이스라엘에서 항암 병동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떨리는 가슴으로 미국에서 온 간호사의 강연을 듣던 간호학생에서 이제 자신의 이름 앞에 ‘미국 간호사’라는 수식을 붙이기까지, 조금은 특별하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청춘 간호사가 꿈을 향해 타박타박 걸어온 과정을 솔직하고 경쾌하게 풀어놓은 에세이이다.
저자 김리연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예전의 자신처럼 울고 웃으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수많은 청춘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초보 간호사의 희로애락과 더불어 병원 안팎에서 저자가 겪은 다양한 좌절과 성취의 경험에 관해 포장과 가식은 걷어내고, 꾸밈없이 친근하게 써내려갔다.
05. 무분별의 지혜(김기태 저, 판미동)
젊은 날 자신의 모든 것이 싫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삶이 늘 힘들고 괴로워 수도원의 수사로, 공사판의 막노동꾼으로, 배타는 선원으로 곳곳을 떠돌며 방황도 했다. 그러다 문득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20년 간 동양철학과 세계 경전을 바탕으로 마음공부, 사람 공부를 해 온 저자 김기태는 옛 선사들의 일화, 논어, 도덕경, 성경 등 동서양의 고전을 종횡무진하며 인문학적 재미와 교양을 함께 선사해왔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가장 완전하다는 말을 건네며, 지금 이 순간 삶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긍정하는 용기를 불어넣어준다.
팔만대장경의 핵심과 불법의 정수가 함축돼 있어 ‘문자 중의 최고의 문자’로 칭송 받으며 최고 법문으로 1400년간 널리 읽혀왔던 ‘신심명’. <무분별의 지혜>는 이 신심명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며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을 넘어 매 순간 있는 그대로 감정을 받아들일 것을 권하고 있다. 우리네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스스로 만든 ‘기준’ 때문. 완전과 불완전,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나로 존재하는 힘, 그것이 바로 무분별의 지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