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감성 충만, 가곡 속으로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쓸쓸해지는 감성의 계절, 가을이다.
무심코 흘려들었던 노래가 가사 하나하나 예사롭게 들리지 않고,
그 노래의 잔잔한 선율마저 내 심금을 울리는 그런 가을이 왔다.
스치는 낙엽 하나에도 마음이 일렁이는 그런 계절.
깊어가는 가을…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가곡의 매력 속으로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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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음악의 만남, 가곡(歌曲)

 

가곡 이라고 하면 왠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지지만 간단하게 말해 시를 아름다운 선율로 노래한 것이 바로 가곡이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시조에 곡을 붙이고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형식으로 가곡을 사랑해 왔다. 생의 희로애락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위로받고 또 즐겨왔던 것이다. 아름다운 시와 잔잔한 선율의 만남, 이 가을 우리 마음에 작은 위로를 전하는 몇 곡의 가곡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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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목월의 사랑, 그리고 이별이야기

 

중년의 박목월 시인은 제자와 사랑에 빠져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와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당시 박목월 시인에게는 부인이 있었는데 요즘 흔히 하는 말로 하면 불륜이었던 셈이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시인의 부인은 제주를 찾았다. 그리고 두 사람 앞에 돈 봉투와 추운 겨울 지내라고 두툼한 옷가지를 내밀고 떠난다. 떠나가는 부인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고 박목월 시인은 가슴이 아파 제자와의 사랑을 끝내기로 결심한다. 이별의 밤, 사랑하는 여인에게 이별의 선물로 지어준 시가 바로 이 ‘이별의 노래’이다. 이후 1952년 작곡가 김성태가 대구 피난길에서 이 시를 접하고 심금을 울리는 시제에 감동하여 하루 만에 곡을 붙여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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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넘어 사랑받는 가곡, ‘봉선화’

 

작곡가 홍난파와 김형준은 이웃으로 서로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김형준이 살던 집 울안에는 봉선화 꽃이 가득했는데 봉선화를 보면 그는 곧잘 “우리 신세가 저 봉선화꽃 같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20년에 홍난파가 《처녀촌》이란 단편집을 내면서 그 서장에 〈애수〉라는 제명의 악보를 실었는데 뒤에 김형준이 가사를 붙임으로써 가곡 〈봉선화〉가 탄생되었다. 일제 강점기, 나라를 잃은 슬픔을 노래한 이 가곡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으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는 가곡으로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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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가곡 ‘향수’

 

‘향수’는 시인 정지용이 일본에서 유학할 때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한가로운 고향의 모습을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게 그려낸 정지용의 대표적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곡을 붙인 후 국내 최정상의 성악가 박인수와 이동원이 이 곡을 부름으로써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정지용의 아름다운 시와 이동원, 박인수의 멋진 목소리가 만나 오랜 시간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가곡으로 많은 이들에게 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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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를 풍미한 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독일 가곡의 전설. 20세기 최고의 바리톤. 우리들의 영원한 겨울 나그네…. 모두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를 부르는 이름들이다. 특히 슈베르트 가곡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어느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불멸의 목소리로 기억되고 있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독특한 음색과 완벽한 발음, 발성으로 베토벤, 슈만, 브람스 등의 가곡을 아름답게 전달했다.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들이 앞다투어 그의 가곡 반주를 맡겠다고 나설 정도였지만 디스카우의 최고의 파트너는 역시 제랄드 무어. 1971년 제럴드 무어와 호흡을 맞춰 발표한 ‘겨울나그네’는 클래식 최고의 명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2012년 우리 곁을 떠난 피셔 디스카우, 그가 남긴 아름다운 선율과 천상을 목소리를 들으며 깊어가는 이 가을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