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작가 배순탁의 뮤직토크
마음을 움직이는 90년대 뮤직

 

최근 90년대 음악이 대세다. 7080 붐에 이어 현재 인기를 모으고 있는 90년대 음악은, 무엇보다 ‘대중음악’의 절정기라는 측면에서 파악되어야 마땅하다. 즉, 이 시절에는 좋은 음악이 많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 음악들을 대부분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었고, 게다가 그 음악들이 모두 잘 팔렸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 당시는, 음악 산업과 음악 예술이 가장 정점에서 동거한 시기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한도전 ‘토토가’에서 소개한 음악들과는 조금 다른 영역의 것들로 골라봤다. 모두 대중적인 인기뿐만 아니라 예술적 성취로도 정상을 내달렸던 곡들이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각별한 노래 5곡을 소개한다. 1977년생인 내가 학창 시절에 정말 많이 들었던 음악들이다. 지금 불고 있는 90년대의 복고 열풍이란, 나에게 있어 추억의 또 다른 이름이니까.

 

 

가려진시간사이로

 

가려진 시간 사이로 / 윤상 (1992)

 

뭐랄까. 그런 곡이 있다. 그 곡이 지겨워지는 게 싫어서, 듣고 싶어도 조금 참고 듣지 않는 음악. 이 세상에 물리지 않는 음악이란 없다. 계속 듣다 보면 당연히 그만 듣고 싶은, 티핑 포인트 같은 게 오기 마련이다. 음악 평론가들은 이걸 가리켜 음악 듣기의 ‘피로감’이라고 부르는데, 이 피로감이 빨리 오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란 알고 보면 간단하다. 그 곡이 아무리 땡겨도 조금 참고, 정말 듣지 않으면 못 견딜 때에만 찾아서 듣는 것이다. 나에겐 윤상의 ‘가려진 시간 사이로’가 바로 그런 곡이다. 이 노래는 돌아오지 않을 어떤 시절을 아련하게 환기시키는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가 만난 윤상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금지된

 

금지된 / 이소라 (1998)

 

이소라 음악의 핵심은 헛된 희망 따위 논하지 않고, ‘슬픔을 슬픔으로 이겨내려 하는 정서’에 있다고 본다. 그의 음악은 듣는 이들에게 아픔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마취제가 아닌 각성제로서의 음악이다. 대표적으로 이 곡의 노랫말을 곱씹어보면, 이소라의 음악에서 화자가 얼마나 ‘처절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줄에 매인 시간들’이라니, 슬픔에도 스케일이 있다면 이것은 대규모다. 이소라(작사)와 정재형(작곡)이 이루어낸 시너지 때문이 아닐까. 정재형은 베이시스 시절부터 이런 유형의 곡을 만드는데 특별히 능숙했다. 코드 진행부터 편곡까지, 누가 들어도 정재형표 음악이다. 그는 오선지 위에 한편의 비극을 쓰고자 했고, 여기에 이소라의 탁월한 가사와 독보적인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하나의 명곡을 완성해냈다. ‘금지된’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어있는 명사? 그것은 아마도 ‘사랑’일 것이다.

 

 

해에게서 소년에게

 

해에게서 소년에게 / 넥스트 (1997)

 

신해철이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몇 개월이 흘렀다. 그의 수많은 음악들이 차트를 역주행하고, 재조명받았다. 우리는 늘 이런 식이다. 항상 그게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걸 모른 채, 그 순간을 무심히 흘려보내곤 한다. 그럼에도 단 한 가지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가 남긴 음악적 유산이 얼마나 거대한지, 다시금 절감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 곡 ‘해에게서 소년에게’가 신해철이라는 거인의 발자취를 압축적으로 대변해준다. 시원시원한 록 비트와 선명한 멜로디, 탁월한 연주와 보컬이 만나 ‘팝 록’의 어떤 이상향을 일궈낸다. 애니메이션은 좀 별로였지만, 이 곡을 포함한 사운드트랙 속 음악들만큼은 예외 없이 황홀했다.

 

 

내게

 

내게 / 이승환 (1993)

 

누군가와 헤어지고 난 뒤에 이 곡을 정말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이별을 논하는 가사의 설득력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경험을 했다. 어느덧 상처는 아물고, 이 곡이 지닌 음악적인 측면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감성에서 이성으로의 전환이랄까. 자화자찬하자면 이때부터 평론가로서의 바탕이 형성되기 시작한 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나는 이승환이 완성한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가 이 곡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후렴구 부분의 ‘워~’하면서 몰아치는 파트는 지금 들어도 감동적이다. 이렇게 사람은 떠났지만, 음악만큼은 그 자리에 남아서 나를 위로해줬다. 이승환에게, 그의 음악에게 감사해야 마땅할 일이다.

 

 

부디

 

부디 / 윤종신 (1995)

 

윤종신의 음악은 독특하다. 일단, 멜로디가 진행되는 라인 자체가 뭐랄까, 익숙한 길을 따르지 않고, 굳이 조금 다른 쪽으로 방향타를 잡는다. 이건 그가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윤종신 음악의 힘이 극대화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거의 음악 이론 없이 곡을 만들다보니, 그게 도리어 장점으로 전환되는 순간들이 있는 것이다. 이게 성공할 수도, 가끔은 실패할 수도 있는데, 이 곡 ‘부디’는 매우 성공적인 케이스로 그의 음악 역사에 있어 앞으로도 계속 거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