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말, 이른 아침 팔당으로 향하는 중앙선 앞과 끝 부분에는 자전거를 들고 탄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얼굴 표정에는 곧 시작될 레이스에 대한 기대감이 서려있다. 봄바람을 스치며 온 몸으로 봄을 맞이하는 방법, 남한강 자전거길 투어링을 추천한다.
오늘의 코스는 남양주시 팔당역에서부터 국수역에 이르는 구간, 초보자에게는 꽤 강도가 높은 레이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 나선 걸음, 이 코스의 매력을 제대로 만끽하는 쪽을 택했다. 팔당역에서 본격적인 코스에 진입하기 까지는 2차선 도로를 지나야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다. 코스가 시작되는 부분 탁 트인 남한강의 풍경이 가슴 속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린다.
남한강 자전거길에는 다양한 매력이 구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폐철로 구간을 지날 때면 낭만 어린 옛 기억이 떠오른다. 녹슨 철제 다리를 건너는 것이나,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오르막길을 넘어가는 재미도 특별하다. 또 각 구간에는 제철 재료로 맛을 낸 별미가 유혹한다. 단 재차 강조하는 점은 초보자의 경우 어느 정도의 체력 안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평소에 운동을 하지 않던 사람이 무턱대고 왕복 40km 남짓 거리를 만만하게 본다면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상황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체력에 자신이 없는 이라고 해도 코스 중간 중간에 쉼터, 카페 등에서 재충전해가며 쉬엄쉬엄 가면 못 갈 것도 없다.
홀가분하게 가도 좋다
‘자전거도 없는데 무슨…’이라고 하며 지레 포기할 필요는 없다. 팔당역에는 자전거 대여점이 있어 구태여 자전거를 끌고 오는 수고를 할 필요도 없다. 남한강 자전거 길은 팔당대교가 보이는 팔당역에서부터 운길산, 양수, 신원, 국수, 아신, 오빈, 양평역까지 이어진다. 어떤 역에서부터 어떤 방향으로 시작하든 선택은 자유다. 그러나 남한강 자전거 길의 매력을 제대로 맛보고자 한다면, 팔당역에서 출발하는 것을 추천한다.
코스의 백미인 능내역 옛 역사와 북한강 철교, 제철 미나리 전과 도토리묵을 맛보는 경험을 놓치기 싫다면 더욱 그렇다. 팔당역에서 출발하는 코스의 시작부터 자전거길 옆 강변의 풍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떠오르는 해를 정면에 두고 출발하는 길, 스쳐가는 풍경을 한동안 온몸으로 느끼며 달리다보면 문득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하다. 첫 오르막길의 숨 가쁨은 이 길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팔당역에서 팔당댐까지의 거리는 약 4km정도다. 오르막길 탓에 시작부터 다리가 풀려버릴 것 같지만, 예스러운 철길 코스를 접하자 다시 힘이 생기기 시작한다. 과연 이 길의 다음 코스에는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깜깜한 터널을 지나는 재미
팔당역에서 출발해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힐 정도가 되니, 저 멀리 팔당댐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봄 햇빛에 빛나는 강의 풍경과 꽤 잘 어울린다. 댐을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정도까지 닿을 때면 이 코스의 첫 터널을 지나야 한다.
봉안터널이라 불리는 이 터널에 들어서자 순간 스산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는다. 바깥 온도와는 적어도 3도 이상 차이가 나는 듯하다. 오래전 기차가 지났던 터널을 자전거로 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서늘한 터널을 벗어나기 위해 페달에 힘을 더 해본다. 막상 터널을 벗어나고 나니 바깥이 덥다는 생각이 든다. 온몸의 열기가 기분 좋게 몸을 덥힌다.
맞바람을 맞으며 한동안 달리다보면 이번에는 능내역이 나온다. 이곳은 옛 중앙선 철로의 역사로 지금은 그 시절을 추억하는 전시장소로 탈바꿈해 있다. 잠시 자전거를 세워두고 역사 안을 둘러봤다. 양은 주전자와 난로, 나무 의자 등이 역사(歷史)를 말하고 있었다. 능내역을 한 바퀴 둘러본 뒤, 다음 목표로 삼은 것은 운길산 역 인근에 있는 북한강철교다. 이 구간에는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난다는 두물머리가 있다. 두 물길이 만난다고 해서 ‘두물머리’라 붙여진 이곳에는 봄이면 연꽃이 만발하게 피는 ‘세미원’이 있다. 코스 중간에 세미원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잠시 핸들을 돌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아직 연꽃의 꽃망울이 피어오르기에는 이르다 싶어 다음을 기약하고 다시 북한강 철교로 방향을 잡았다.
강 풍경을 바라보며 가다보니 저 멀리 거대한 철골이 위세를 뽐내는 철교가 눈에 들어온다. 다가갈수록 왠지 자전거를 타고 건너고 싶지 않다.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느린 걸음으로 철교를 건너본다. 마치 옛날 전쟁영화의 철교를 연상시키는 이곳은 바로 옆에 새로 건설된 철로가 나란히 이어져 있다. 새로운 것이 옛것을 대체했지만, 옛것은 이제 다시 새로운 쓰임이 되고 있다. 느린 걸음으로 북한강 철교를 지나 다시 페달을 밟았다. 양수역을 지나 남한강 물길을 따라 평탄한 길 끝에 신원역이 있다. 지나온 길이 벌써 약 16km가 넘는다. 돌아갈 생각도 해야 할 시점, 체력의 한계가 느껴지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쉽지 않은 걸음을 한 마당에 조금 더 가보자는 오기가 생긴다.
결국 국수역까지 다시 페달을 밟는다. 하지만 웬걸, 이해 ‘후회’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을 맴돈다. 이제까지 만나지 못했던 가파른 오르막길이 복병처럼 숨어있던 탓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날만큼은 긍정의 기운에 의지한 채 다시 페달을 밟아본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언덕의 정점을 지나자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흐는 땀이 맞이하는 바람을 더 시원하게 한다. 어느새 봄의 기운이 온몸에 충만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