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작가 배순탁의 뮤직토크]
원작보다 유명해진
영화음악 BEST 5

 

영화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다. ‘영화적인 음악’이 있는가 하면 ‘음악적인 영화’가 있고, ‘영화 속 음악’이 화제가 되는가 하면 ‘음악이 다루는 영화’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어떤 영화의 경우 영화 그 자체보다는 영화 속 음악을 통해 더 긴 생명력을 얻고는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그 리스트 중 일부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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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alling Slowly / Glen Hansard & Marketa Irglova <원스>

원곡보다 유명한 영화음악을 거론할 때 역시 이 곡을 제일 먼저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기실 작은 프로젝트에서 출발한 이 영화가 급기야 세계적인 화제를 모을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의 힘 덕분이었던 까닭이다. 최초 이 곡을 작곡했을 때 글렌 한사드는 영화에 출연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친한 사이였던 감독의 권유로 주연 남자 배역을 맡게 되었고, 결국 아카데미의 주제가상까지 거머쥐면서 파트너였던 마르케타 이글로바와 함께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이후 수많은 음악 영화들이 등장했지만, 투자에 대비한 상업적 성공 및 문화적 현상의 결과로 볼 때, 이 영화 음악을 능가하는 경우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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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She / Elvis Costello <노팅힐>

영화 <노팅힐>하면 떠오르는 노래가 두 곡 있다. 바로 빌 위더스(Bill Withers)의 ‘Ain’t No Sunshine’과 엘비스 코스텔로의 이 곡 ‘She’다. 두 곡 중 ‘She’는 영화 맨 마지막에 두 주인공의 사랑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면서 수많은 남녀들을 달콤한 사랑의 심연에 풍덩 빠뜨렸던 바 있다. 이런 이유로, 몇 년 전에 있었던 엘비스 코스텔로의 내한 공연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콘서트장에 간 수많은 관객들 중 상당수가 ‘She’를 직접 듣고, 그와 비슷한 노래를 기대했을 텐데 실망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사실 엘비스 코스텔로의 전체적인 음악 성향은 ‘She’와 멀어도 한참 먼, 펑크 록에 가까운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관객들 중 일부의 황당해하는 표정을 떠올리며 나는 오늘도 이 곡 ‘She’를 듣는다. 역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발라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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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Lost Stars / Adam Levine <비긴 어게인>

과거에 ‘Falling Slowly’가 있었다면, 최근에는 ‘Lost Stars’가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거리의 가게와 카페마다 이 곡이 자주 울려 퍼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배철수의 음악캠프에도 신청곡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영화 <비긴 어게인>의 테마인 이 곡을 부른 주인공은 머룬 파이브(Maroon 5)의 보컬리스트인 아담 르빈. 이 곡을 리스트에 포함시킨 이유는 다름 아닌 가수의 이름 때문이다. 가수의 이름이 아담 리바인이 아니라 아담 르빈이 확실하게 맞다. 얼마 전 그래미 시상식에서도 사회자가 ‘아담 르빈’이라고 소개하는 걸 내 두 귀로 똑똑하게 들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만큼은 앞으로 정확하게 발음해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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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Supermassive Black Hole / Muse <트와일라잇>

의외일 것이다. 대중적 성공이야 논외로 치더라도, 영화적 완성도에서는 혹평을 면치 못했던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꼽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장담하건대, 이 시리즈에 삽입된 음악만큼은 ‘보편적인 관점’에서 신뢰해도 좋다. 그런데 이 영화의 음악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알렉산드라 팟사바스(Alexandra Patsavas)라는 이름을 머리에 입력해야 한다. 그는 바로 이 시리즈의 선곡을 담당한, 할리우드의 뮤직 수퍼바이저(음악 감독)이다. 68년생으로 어린 시절부터 록 음악에 심취한 그는 각종 뮤직 에이전시의 직원으로 일하며 뛰어난 선곡감각을 발휘, 결국 할리우드의 넘버원 음악 감독으로 우뚝 선 입지전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록 밴드 뮤즈는 지금이라도 당장 알렉산드라 팟사바스한테 달려가서 최소한 절을 100번은 해야 한다. 그들의 음악 중 ‘Supermassive Black Hole’이 <트와일라잇>에 쓰이면서 비로소 미국 진출의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도 수많은 뮤지션과 그들의 매니저들이 알렉산드라 팟사바스에게 음원을 보내고 제발 들어봐 달라고 애원을 보내는 이유다. 실제로 그는 하루에 씨디를 몇 백 장씩 듣는다고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 바 있다. “괜찮아요. 처음 30초만 들어보면, 이게 지금 필요한 곡인지 아닌지 딱 감이 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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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절망에 관하여 / 신해철 <정글스토리>

해외에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있다면, 국내에는 정글스토리가 있다. 그나마 트와일라잇은 영화가 성공이라도 했지, 정글스토리가 거둔 관객수는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신해철이 맡은 음악만큼은 끝내준다. 1번 트랙이자 김세황이 기타를 친 ‘Main Theme From Jungle Story’와 이 곡 ‘절망에 관하여’는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감동을 선사한다. 신해철이 남긴 수많은 명작 가운데 단 한 장만 선택하라면 아마 나는 이 음반을 선택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