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매화꽃의 절경
구례 누룩실재 트레킹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에서 4월을 ‘잔인한 달’이라 표현했다. 그렇다면 5월은 아마도 ‘아쉬움 가득한 달’이 아닐까? 봄의 끝자락에서 지는 꽃을 바라봐야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시기. 구례의 봄은 일찍 찾아오는 만큼, 일찍 사그라질 채비를 한다. 옛 유행가의 구절을 인용해, ‘이 봄의 끝을 잡고~’ 구례 산천을 뒤덮은 산수유꽃과 매화꽃의 장관을 눈에 담을 수 있는 누룩실재 트레킹을 소개한다.

 

전남 구례는 산수유로 유명한 고장이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핀 노란 산수유꽃이 마을 곳곳, 지천에 피어나며 동화 속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을 무렵이면 다시 붉디붉은 산수유 열매로 불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그래서 매년 봄과 가을, 구례는 이 놀라운 풍경을 카메라와 눈에 담기 위한 출사객과 여행객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조금만 고개를 돌려보면 구례의 또 다른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아직은 사람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누룩실재는 또 다른 비경(祕境)을 간직한 곳이다.
전라남도 구례군의 구례읍 논곡리와 계산리, 용방면 용정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인 누룩실재는 매년 봄이 되면 알록달록한 매화꽃이 지천으로 피어나며 화사함을 자랑한다. 맺힌 꽃봉오리에서 피어오는 향이 마치 막걸리의 그것과 같은 듯해 누룩실재의 이름을 굳이 막걸리와 연관시켜 보려했건만, 알고 보니 예전 이곳에는 누릅나무가 많아 종래에는 그 지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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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산수유마을 풍경과 산수유꽃, 아래는 초록빛을 띈 누룩실재의 매화꽃.

 

백련사 앞, 돌담길을 따라 걷다
누룩실재를 넘어가는 코스는 사동마을 백련사에서 시작할 것을 권한다. 지역 사람들에게는 사동마을이라는 지명보다는 ‘절골’로 통하는 곳. 백년사까지는 딱히 교통편이 없어 택시를 이용하거나, 자가용을 운전해 백련사 앞 주차장에 주차하고 올라가는 것이 좋다.
백련사 표지석을 기준으로 우측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가면 인적이 드문 마을의 돌담길이 나타난다. 돌담 너머로는 노란 산수유꽃이 핀 가지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어서 오라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고즈넉한 마을 돌담길을 걸어 올라가다보면 간간히 빈집도 보이는데, 생각 같아서는 이런 곳에 터 잡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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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 앞 풍경, 오르는 길에 보이는 동백나무, 주인 없는 빈집의 풍경이 이채롭다.

 

그렇게 길을 따라 가다보면 수미정사라는 절이 나온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라는 안내문이 있는 터라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예의일 듯하다. 이후부터는 본격적인 임도(林道)가 나온다. 특별한 멋도 없고, 굽이진 길에 적당히 숨이 차오르는 경사로를 1시간가량 올라야 한다.
중간 중간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럴 때마다 오른쪽 길을 선택해 가는 것이 바른 길이다. 마땅히 앉아 쉴만한 곳도 없고, 주말에도 인적이 드문 곳인 만큼 5월 중에는 마실 물과 간단한 간식을 지참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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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러운 산동마을의 돌담길. 수미정사. 임도 중간에 있는 대나무밭.

 

시원한 산들바람이 간간히 불어오니 너무 서두를 필요도 없고,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고 조바심 낼 필요도 없다. 누룩실재 정상은 사실 별 볼 일 없는 풍경이다. 하지만 실망은 금물, 정상을 고비로 끝없을 것 같던 오르막길이 내리막길로 변한다.

이 트래킹 코스에서 조금 특이한 점은 오르막길 와중에는 새소리 한번 듣기 힘들다는 것, 그러나 내리막길로 접어들면 조금씩 새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딱따구리의 나무 쪼는 소리와 이름 모를 새의 지저귐이 귓가를 간질이는 느낌이 그리 싫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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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러운 실개천의 모습도 누룩실재로 향하는 길을 장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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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룩실재 정상에 표지판, 유곡 쪽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상유마을 초입에 보이는 매화꽃.

 

고개를 넘자 새로운 풍경이 열리다
고개를 넘어 한동안 터벅 걸음으로 내려가자 드디어 상유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는 산수유꽃보다는 매화꽃이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흰 매화꽃만 보이더니 가면 갈수록 청매화, 홍매화가 눈에 띄며 알록달록한 풍경을 연출한다. 임도는 마치 뱀이 지나간 흔적처럼 구불거리는 내리막길로 끝없이 이어진다. 오르는 길이 1시간 반 남짓이었다면, 내려가는 길 또한 그 만큼 걸린다. 하지만 체력적으로 지쳐가는 탓에 그 이상 걸리는 듯한 힘겨움도 있다. 그러나 점차 짙어지는 매화꽃 향기에 힘든 것도 곧 잊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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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유마을에서 하유마을까지 이어지는 매화꽃의 향연.

 

인적이 드문 산골 마을이지만, 중유마을 쯤 가니 어린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집 담을 넘어 들려온다. 이런 풍경을 보며 자라는 아이들의 어린 시절이 문득 부럽게 느껴진다. 중유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끝없이 이어지는 매화 밭이 펼쳐진다. 평소 기본 체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다리가 풀릴 수도 있으니, 가급적 쉬엄쉬엄 가는 것이 좋다. 옛 사람들은 이 길을 넘어 사동마을을 지나 구례장터로 장을 보러 갔다고 하니, 문명의 이기가 생활의 편의는 줬어도 사람들의 체력은 한심할 정도로 만들어 놨다는 생각이 든다.

중유마을을 지나 한동안 걸어가니 점차 내리막길의 경사도가 완만해지며 평지가 나타난다. 역시 매화나무 밭이 끝없이 이어진다. 구례가 산수유로 먹고 사는 고장이라고 하지만, 이곳만은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이 주 생산품인 듯싶다. 하유마을을 지나자 다시 보통의 시골 마을 풍경이 나타난다. 밭에 김을 매고 논에 물을 대는 촌로의 모습을 보니 여름을 준비하는 분주함이 느껴진다.
여기서 다시 구례읍내로 길을 잡으려면 마을 입구에 버스를 타도되고, 시작점인 백련사로 돌아가려면 택시를 불러 타는 것도 방법이다. 체력적으로 사동마을 백련사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면, 거꾸로 유곡마을 입구에서 하유마을부터 상유마을까지만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5월, 이맘 때 라면 짙어진 매실의 향기가 마을 어귀부터 진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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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 구례 산닭구이
구례 하면 산닭구이 맛을 빼 놓을 수 없다. 전남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 55에 위치한 당골식당과 양미한옥가든에서는 특별한 산닭구이를 맛볼 수 있다. 시골 산야를 날라 다니는 토종닭을 최소한의 손질만 한 채로 구워먹는 식인데, 맛이 여간 고소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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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닭구이에 딸려 나오는 닭육회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별미인데 닭가슴살과 모래집, 껍질을 소금과 참기름으로 조미한 것이다. 처음에는 생소해 맛보기 주저되지만, 의외로 누린내 나지 않고, 맛깔스럽다. 모든 식사가 끝난 후에는 녹두죽이 나오는데 이 또한 별미다.

 

멋들어진 자연풍경을 간직하고 있는 전남 구례 누룩실재에서 ‘멋’과 ‘맛’이 있는 트레킹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