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인 이번 달은 감사와 사랑의 노래를 소개한다. 뮤지션들은 음악의 힘을 빌려 늘 누군가에게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해왔다. 나만 해도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함, 고마움, 존경, 사랑 같은 말을 던지고 싶을 때, 음악으로 이를 대신한 적이 많았다. 그 까닭은 내가 ‘샤이 가이(shy gay)’이기 때문이다. 사실 말로 갑자기 “고마워”, “사랑해”라고 하기에는 뭐랄까, 조금은 갑작스럽고, 왠지 모르게 창피한 기분이 들지 않는가 말이다. 나처럼 천성적으로 소심한 독자들은 다음의 리스트를 눈여겨봐두길 바란다. 당신의 마음을 대신 전해줄, ‘러브 레터’ 같은 노래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김동률 ‘감사’
‘감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아무래도 김동률의 이 곡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곡의 매력은 제목이 ‘감사’인 반면, 가사에서는 ‘감사’를 남발하지 않는데 있다. 가사집을 펼쳐놓고 보라. 처음 두 번 ‘감사’라는 단어가 나온 뒤에는 ‘감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곡의 정서는 끝까지 유지되어 듣는 이들을 감동에 빠뜨린다. 이건 다름 아닌 멜로디의 힘이다. 이 곡은 사랑과 감사가 결국 동일한 감정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노래로, 무엇보다 김동률표 서정적인 멜로디가 빛을 발한다.
인순이 ‘아버지’
우리 아버지는 1939년생이다. 젊은 시절 일을 열심히 하셨고, 그래서 우리 가족을 남부럽지 않게 보살펴주셨다. 그런 아버지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당연히 IMF 무렵이었다. 집안에서 큰 소리가 오가기 시작했고, 몇 년 뒤에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국 헤어지셨다. 이때부터 지하 월세방을 아버지와 나, 둘이서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하셨는데, 미련하고 불효막심한 아들놈은 “약 좀 드시면 낫겠거니”하면서 방치하다시피 했다. 병명은 복막염이었고, 큰 수술을 한 뒤에 심각한 후유증이 뒤따랐다. 치매 판정을 받은 아버지는 지금 지방의 요양원에서 못난 아들이 오기를 매일같이 기다리신다. 때로 음악은 특정한 시절을 소환하는 마법을 부린다. 그리고 내 경험에 의하면, 어려운 시절보다는 좋았던 시절이 소환될 때, 눈물이 왈칵 차올라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곤 한다. 시간이 흐르면 나쁜 기억들은 사라지고, 행복했던 기억만이 남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것이다. 나에게는 이 노래, 인순이의 ‘아버지’가 그런 경우다.
Luther Vandross ‘Dance with My Father’
국내에 인순이의 ‘아버지’가 아버지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노래 1순위라면, 해외에서는 무조건 이 곡 ‘Dance with My Father’가 1순위다. 이 곡은 무엇보다 뮤직비디오와 함께 봐야 한다. 비욘세(Beyonce),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 등, 유명 뮤지션들이 직접 출연해 감동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감상하다 보면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가족들과 춤을 추는 경우가 많지 않아 느끼는 정서가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이 곡이 주는 감동에는 변함이 없다. 그저 아버지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 싶었던, 루더 밴드로스의 진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말 아버지를 찾아가는 길에, 이 곡을 들으면서 가야겠다.
Abba ‘Thank You For The Music’
마지막으로는 아바의 이 노래를 골랐다. 이 곡은 사람에 대한 감사가 아닌, 음악에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사실 나는 음악의 힘을 거의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다. 확언컨대, 의식주가 비로소 해결되고 난 다음에야 음악은 저 자신의 자리 하나쯤 겨우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음악에는 음악만이 줄 수 있는 커다란 위로의 기능이 있다고도 믿는다. 음악을 듣다가 눈물 흘렸던 기억, 그 눈물로 인해 마음속의 뭔가가 씻겨나가는 듯했던 경험, 다들 한 번씩은 있지 않은가. 이렇게 인생에 있어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은 대개가 이중적이다.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니까, 오늘도 음악에 감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를. 무엇보다,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를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