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곳을 가든 그곳의 문화와 개성을 가장 잘 느끼기에 ‘재래시장’만한 곳이 없다. 워낙 유행이 빠른 요즘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도 세계 공통으로 공유되는 음료, 음식, 패션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모든 여행에 시장투어가 빠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서울에서는 황학동 벼룩시장이 뜨고 있다. 1969년 청계천 공사와 함께 형성돼 지금은 각종 골동품들과 구제 옷가지들이 가득한 곳, 외국인 관광객들은 물론 서울시민의 발길까지 이끄는 황학동 벼룩시장을 다녀왔다.
황학동시장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개그맨 정형돈과 가수 지드래곤이 구제옷을 마구 사들이는 모습이 공개돼 유명해졌다. 황학동시장은 청계천 7~8가에 걸쳐 있다. 지하철로는 1•6호선 동묘앞 3번 출구와 가깝다. 역과 가까운 골목으로 들어서면 몇 발짝 안가 헌옷, 헌신발, 헌시계를 파는 상점들이 나온다. 명품시계나 고가의 액세서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상품들에는 가격이 명시되어 있다. 가격대는 1,000~5,000원 정도다. 언뜻 보기에는 살만한 물건이 있을까 싶지만, 느긋하고 꼼꼼하게 아이쇼핑을 즐기다 보면 간간이 괜찮다 싶은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패션피플들은 종종 이곳에서 득템을 하기도 한단다.
집집마다 걸린 간판구경도 재미있다. 동춘사, 명품구제 백화점, 대지자원, LP 사구팔구, 동무식품, 꽃돼지네, 대지이발 등 닮은 듯 다른 느낌의 간판들이 눈에 띈다. 시장투어 중 주의할 점이 있다면 사진촬영이다. 출사를 목적으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부쩍 예민해진 상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촬영 전에 미리 물어보기만 하면 대부분 흔쾌히 허락해준다. 단, 벼룩시장의 특성상 카드는 받지 않으므로 미리 현금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다.
황학동시장은 청계천 복개공사와 함께 활성화된 곳이다. 같은 시기 시장 맞은편에 삼일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주변에 차도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각종 골동품이나 중고품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모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때문에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곳이 황학동시장이다. 1970~80년대를 뜨겁게 장식했던 LP음반, 1990년대 유행했던 워크맨, 지금은 보기 힘든 TV, 멋쟁이들만 즐겨 입던 구제 청재킷, 청바지, 손목에 땀띠가 나도록 차고 다녔던 복고 시계, 매일 아침 단잠을 깨우던 탁상시계, 옛날 전문가들만 썼던 필름 카메라, 집에 하나쯤 들여놓고 싶은 앤티크 가구 등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들 투성이다. 이중 가전제품이나 수동 카메라, 앤티크 가구 등은 가격대가 꽤 나가는 편이다.
걷다가 지칠 즈음이면 녹두전, 식혜, 미숫가루, 냉커피, 팥빙수 등 요깃거리를 파는 행상 리어카들을 찾아간다. 음료는 한 잔에 1,500원, 간단한 식사는 1인당 4,000~5,000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덥고 힘들 때는 뜨문뜨문 있는 헌책방이나 올드팝이 흘러나오는 LP상점에 들어가 잠시 쉬어도 좋다. 이따금씩 보이는 이발관에는 남성컷트 4,000원, 염색 5,000원이라고 써 있다.
황학동시장은 모든 상인이 하루 7~8시간만 영업을 할 수 있다. 시장을 꼼꼼히 둘러보려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주말에는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몰리기 때문에 주중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벼룩시장의 묘미는 누군가의 사연과 손때가 묻은 물건을 헐값에 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누군가에게는 쓸모 없는 물건처럼 보일지언정 임자를 만나면 보물이 된다. 그 속에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값진 추억과 세월이 담겨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