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들] 간판수집가 홍성재
“간판과 사람, 정체성 지닌 점에서 비슷하죠.”

 

우리는 매일 같이 길을 걷는다. 그런데 모두가 걷는 그 길이 어떤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놀이터가 된다. 젊은 예술가이자 사회적기업가인 홍성재 씨는 어느 날부터 거리를 걸으며 오래된 간판, 재미있는 간판, 특이한 간판 등을 사진기로 찍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7천여 개의 ‘좋아요’를 받으며 간판수집가로 활동하고 있다. 간판수집가 ‘홍성재’ 씨를 만나 그의 독특한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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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재 씨의 원래 직업은 ‘000간’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가다. 그의 사무실은 서울 창신동 봉제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통유리에 흰색 페인트로 꾸며진 그의 회사는 아담하지만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SNS활동을 활발히 하지만 그의 사무실 내부는 아날로그 정취가 물씬 풍겼다. 페이스북에서 그는 현재 13명의 편집자들과 함께 ‘간판수집’이라는 관심사를 더욱 활발히 공유하고 소통하고 있었다.

 

Q. 간판수집가이면서 사회적 기업인 ‘000간’을 이끌고 계십니다. 000간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000간은 커뮤니티 디자인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 재생을 실천하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000간의 숫자 ‘0’은 비어있지만 다른 것들로 채워지기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간은 ‘사이, 틈, 엿보다, 참여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지역 불균형이 심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참여와 협업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공간의 공유와 공생을 통해 사회 불균형을 해결하는 디자인 기획사라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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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페이스북에서 간판수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페이스북에 이색간판 사진들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사실 간판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은 개인적인 취미활동이었습니다. 그냥 재미로,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시작되었다고 할까요? 일이 바쁘면 누구나 정신적으로 힘들 때가 있잖아요. 바쁠 때 잠깐 짬을 내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평소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하는데 어느 날 문득 거리에 재미있는 간판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처음에는 스스로 위안 받고 싶어서 재미있는 간판을 찍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독특한 간판사진을 찍어 올리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듣고 느낄지도 궁금했고요.

 

“길을 좋아합니다. 걷는 것도 구경하는 것도요. 처음에는 스스로 위안 받고 싶어서 재미있는 간판을 보면 찍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눈에 띄는 간판사진,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했어요”

 

Q. 길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길을 통해 무엇을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길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길은 사람들이 같이 쓰는 공공재입니다. 공공장소인 길, 걷고 싶은 길은 모두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을 걷다 보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까’라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잠을 자는 것, 모두 중요합니다. 길도 그만큼 중요하단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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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간판 사진에 호응을 보였고, 현재는 13명의 편집자가 전국에 있는 간판사진을 수집해 공유합니다. 어떤 부분이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었다고 생각하는지요?

특이하거나 재미있는 것에 대한 관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같습니다. 일상에 치이다보면 지치고 힘드니까요. 오래된 간판, 유머 있는 간판, 특이한 간판 등은 사람의 미소를 이끌어내는 힘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저처럼 특이하거나 오래된 간판을 통해 그런 위안을 받았던 것 아닐까요? 재미있는 취미활동이니 말입니다. SNS이라는 소통 창구를 통해 같은 관심사를 공유한다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Q. 간판수집가이자 000간을 이끄는 홍성재 대표님에게 ‘간판’은 어떤 의미인지요?

제가 끌리는 간판들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생각해봤는데요. 간판들은 모두 길가에 있고, 공공장소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길’과 ‘공공장소’는 저의 주된 관심사이죠. 또 간판은 정체성이 있다는 점에서 사람과 비슷합니다. 저를 포함한 13명의 편집자들이 찍는 간판과 안 찍는 간판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간판에는 명확한 정체성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개성과 하는 일을 간판에 글씨와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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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홍성재 씨)

 

Q. 간판수집 활동이 지금 하시는 일이나 삶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요?

간판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삶의 즐거움도 느끼고요. 스낵컬처(snack culture)란 말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도 스낵처럼 시간과 장소에 상관없이 누구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제공하고 싶습니다. 간판수집가가 된 것도 스낵컬처를 좋아한 저의 성향과 연결된 결과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페이스북에 올린 간판사진을 보면서 유머와 재미를 함께 느끼는 것 같아 즐겁고 고맙습니다. 간판 수집이라는 행위보다 공통된 관심사로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고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활동하는 것이 더 재미있습니다.

 

Q. 취미로 시작했던 간판 수집이 회사의 디자인 프로젝트로 연결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현대자동차그룹과 함께하는 ‘거리의 이름들’이란 프로젝트였습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청년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000간도 그 프로젝트와 관계를 맺었죠. 지역재생 관련 프로젝트로 봉제공장이 밀집한 창신동에 간판을 달아주는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그래서 ‘거리의 이름들’이 진행됐습니다. 창신동에는 봉제공장만 1천여 개가 모여 있습니다. 예쁜 간판이 아니라 창신동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간판을 디자인했습니다. 소규모 봉제공장의 이름과 문구를 받아 52개 정도의 간판을 디자인 했죠. 공장의 핵심기능을 살릴 수 있는 간판으로 말입니다. 예쁜 간판보다는 필요한 간판이 되도록 디자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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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홍성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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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간판 수집과 관련한 ‘거리의 이름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당시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재미와 취미를 좋아하는 일로 확장시킬 수 있게 돼서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뿌듯함은 잠시, 모자라고 부족한 게 많이 보여 아쉬웠던 마음이 컸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계속 하는 것 같습니다.

 

Q. 최근 사람들 사이에서는 복고와 관련된 아이템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옛 글씨, 옛 간판을 좋아하는 현상도 그 중 하나일 텐데요. 복고, 옛것에 대한 대표님의 생각은 어떤지요?

요즘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우리문화에 대한 자존감이 적은 것 같습니다. 옛것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오래된 간판과 그 속에 적힌 옛 글씨가 주는 ‘허름하고 촌스런 것’의 미학이 있다고 할까요?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복고문화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복고’에는 단순히 추억을 되새기는 것,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과거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그 시절의 좋은 점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간판은 정체성이 있다는 점에서 사람과 비슷합니다. 찍는 간판과 안 찍는 간판이 있는 것을 보면 간판에는 명확한 정체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개성과 하는 일을 간판에 담아 글씨와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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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간판수집가 그리고 000간 운영은 간판 수집과 회사 운영이라는 일차원적인 의미를 넘어 대표님만의 예술형태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통한 예술에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물론 제가 하는 방식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예술의 형태는 다양하고 모두 존중되어야 하니까요.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예술가,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저만의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역할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동시에 책임감도 많이 생겼습니다. 사람들과 관심사를 공유하는데서 오는 친밀감이 참 좋은 것 같습니다.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인 것 같고요.

 

Q. 간판수집가, 소통하는 예술인으로서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은 무엇인지요? 건강나래 웹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재래시장을 어떻게 활성할지에 대한 고민을 000간 식구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시와 함께 하는 신창시장 프로젝트를 준비 중입니다. 단순히 외관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재래시장의 새로운 경영모델을 만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처음에는 큰 도전이라 고민도 많이 했는데요. 시장상인들에게는 생계와 연관된 프로젝트인 만큼 진지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회적 기업들과 재래시장들이 만나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가 큽니다. 또 현재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과 MBA 과정’을 듣고 있는데 무사히 이수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마지막으로 페이스북의 간판수집가에게 재미있는 간판보시면 제보 많이 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