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투어]노동과 예술이 공존하는
‘문래 예술촌’

 

문래동은 1950~60년대 우리나라 산업화시기에 지어진 건물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전철역을 나올 때까지만 해도 역 지척에 이런 골목이 있을 것이란 예상은 전혀 못했다. 철공소 골목에 예술촌이 자리 잡았다고 해서 다소 투박하리라곤 생각했지만 녹슨 철문, 그 위로 피어난 그림, 낡은 담벼락 사이로 펼쳐지는 벽화들로 갑자기 전시공간이 펼쳐졌다. 문래 예술촌은 한마디로 곳곳에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인간적이고 정감 있는 골목이었다. 철공소와 예술이라는 두 개의 대척점이 공존하는 이곳은 그 묘한 조합만큼이나 조화롭고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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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2호선 문래역 7번 출구로 나오면 ‘문래예술공장’이라는 푯말이 보인다. 푯말을 따라 직진해서 500~600m 가다보면 문래예술촌이 시작된다. 이곳을 찾은 날이 주말이라 대부분의 철공소가 문을 닫았고, 작업하는 예술가들도 많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고 골목투어를 할 수 있었다. 문래동 골목은 아기자기한 맛은 없다. 대신 이곳에는 철공소 근로자들과 예술가들의 땀과 혼이 뒤섞여 있다. 문래예술촌 탐방은 골목골목마다 1930년대에서 1970~80년대, 2000년대를 순식간에 뛰어넘는 타임머신 여행 같았다.

 

 

물레, 물래 그리고 문래

‘문래예술촌’이란 이름을 들으면 문래가 주는 어감과 예술촌이라는 단어의 조합 때문인지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골목길 같은 느낌이 든다. 문래동은 1930년대 영등포 일대에 방적공장이 들어서며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사옥정(絲屋町)으로 불리다 광복 이후 한글 이름인 ‘문래’로 바뀌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방적기계를 ‘물레’라고 했다. 지금의 문래동이란 이름이 실을 잣는 기구인 ‘물레’에서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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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소와 예술, 그들이 동거하는 이유

문래동도 한때는 철강 산업의 메카라고 불리며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1960년대에는 경제개발계획으로 철재 공장들과 철물상들이 대거 들어섰다. 1980년대는 문래동이 절정을 이룬 시기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에 IT산업의 성장으로 산업구조가 바뀌고 수도권 공장 이전정책 등으로 공장들은 문을 닫거나 도심을 빠져나가면서 문래동에도 서서히 빈자리가 생겨났다. 비슷한 시기, 가난한 예술가들이 홍대에서 상수동, 합정동으로 밀려나다 문래동까지 오게 되었다. 저렴한 작업공간을 찾았던 예술가들에게 문래동은 그들의 예술혼을 꽃피우기에 그만인 동네였다. 처음에 몇 개 안 되던 작업실이 점차 늘어나면서 그 주변의 벽과 건물들도 서서히 변했다. 최근에는 빈티지 느낌의 갤러리와 다양한 분야의 공방들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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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배려하며 꽃 핀 독특한 공간

주말에는 쉬는 철공소가 많아 철문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볼 수 있다. 투박한 철공소와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이곳의 또 다른 특징은 문 앞, 골목 귀퉁이 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각종 화분과 작은 텃밭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초록색 잎, 알록달록한 꽃들이 피어난 화분은 건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한 문래예술촌에 작은 싱그러움을 전해준다. 문래동 골목에는 그냥 스쳐 지나가기엔 아까운 그림과 풍경들이 많다. 그래서 산책을 하다보면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주의할 점은 서로를 배려하는 골목 투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래동 골목 곳곳에는 ‘초상권을 존중하는 매너 있는 촬영 문화를 만들어 주세요’나 ‘사람 및 내부촬영 자제’라는 글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출사 목적의 사람들이 몰려들자, 문래동 주민들이 사생활 침해로 곤란을 겪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래예술촌은 노동자와 예술가의 직장이자 삶의 터전이지 관광지가 아니다. 따라서 골목 투어나 출사를 하고 싶다면, 철공소와 작업실이 쉬는 한적한 주말에 이곳을 찾으라고 권하고 싶다. 주말에도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사진을 찍기 전에 먼저 허락을 받는 것이 도리라는 점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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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투어 당일 개최 중인 미술전은 <읽기연습-정주희 개인전>이었다.

 

 

대안 예술공간 이포
문래동에는 회사, 설치미술, 음악, 연극, 행위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 대안 예술공간 이포는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한다. 사진과 영상 중심의 창작실이자 전시공간이다. 문래예술촌에는 ‘이포골목’이라는 불리는 골목이 있다. 전시회는 좁은 골목길 사이, 과연 이곳이 갤러리 장소가 맞나 싶을 정도로 허름한 건물 안에서 열린다.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못보고 지나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쉼표 말랑, 정성이 느껴지는 깔끔한 식사
정갈하고 깔끔한 맛의 가정식을 좋아한다면 ‘쉼표 말랑’이 제격일 것 같다. 밖에서 보기에 작은 밥집 같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앉아서 식사할 수 있는 공간과 마당도 있다. 이곳은 ‘나무수레’라는 이름의 가구 공방을 운영하는 이경원 대표의 부인이 낸 가정식 식당이다. 건물은 공장으로 쓰이던 일제 때 건물을 복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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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을 시멘트로 막고 지붕의 목재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나무로 꾸며져서인지 내부는 아늑하고 편안하다. 계절에 따른 제철 식재료로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는 ‘그때그때밥상’, ‘돼지고기 생강조림 밥상’의 한식과 ‘마늘장아찌 또띠야 피자’, ‘감자 & 새우 크로켓’, ‘사과 졸임 파니니’ 등의 양식을 제공한다. 식사 외에 ‘생강 밀크티’, ‘레몬티’ 등 차와 음료도 판매한다.

 

 

팥빙수 2,500원, 신흥상회
같은 맛집이라도 대외적으로 알려진 맛집과 동네 주민들이 인정하는 맛집은 다르다. ‘신흥상회’는 맛집은 아니지만, 문래동 소상공인들의 사랑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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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슈퍼지만 음식도 판매한다. 이곳은 라면과 계란말이 안주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여름 별미로 2천5백 원짜리 팥빙수도 판다. 골목 투어 도중 덥다면 신흥상회 팥빙수를 잊지 말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