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순탁의 뮤직토크]
그 날의 빗소리, 그 날의 음악

 

예전엔 비가 내리면, 습관적으로 신촌에 갔다. 단골 음악 카페인 ‘우드스탁’에서 음악을 듣기 위해서였다. 비 오는 날이면 가게 형님은 항상 문을 열어뒀다. 가게 내부의 습도가 높아져서이기도 했지만 빗소리를 들으며 음악을 감상하라는, 손님을 위한 그만의 배려에서였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이지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다. 당연히 신촌으로 우산을 쓰고 걸어갔다. 그 날 그곳에서 들었던 빗소리, 그 날의 음악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여기에 그 리스트를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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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이어 힙(Uriah Heep) ‘Rain’

팝송 쪽에서 ‘비’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수밖에 없는 곡이다. 심지어 나는 이 곡이 비와 관련한 팝송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명곡이라고도 확신한다. 이 곡의 핵심은 무엇보다 데이비드 바이런(David Byron)의 명품 보컬에 있다. 뭐랄까. 체념과 서정미가 극대화된 듯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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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Mika) ‘Rain’

아니다. 내가 섣부른 판단을 했지 싶다. 유라이어 힙의 ‘Rain’은 물론 걸작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느린 템포의 팝송에 국한된 것으로 수정한다. 그러니까, 비와 관련된 노래는 무조건 발라드 형식일 거라고 여기는 건, 어쩌면 일종의 편견일 수 있다. 바로 이 곡 미카의 ‘Rain’을 들어보라. 비를 주제로 하는 곡이 이렇게 신날 수 있다니, 싶을 것이다. 하긴 비가 온다고 무조건 기분이 다운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닌가. 이 곡을 비가 올 때 더 흥에 겨워지는 사람들에게 안성맞춤인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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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비처럼 음악처럼’

팝송 쪽에 유라이어 힙의 ‘Rain’이 있다면, 가요에서는 이 곡이 넘버원이다. 아직도 비가 내리면 전국의 수많은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앞 다투어 선곡하는 것이 이 노래다. 이 곡은 개인적으로 밀폐된 공간, 예를 들면 차 안에서 들어야 제 맛이 아닌가 싶다. 1년 정도 됐을까. 시간은 새벽 2시쯤. 집으로 향하는 택시 안의 라디오에서 이 곡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위를 흐르는 김현식의 목소리는, 마치 세상에서 단절된 자의 외로움 같은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들렸다. 아마 그 누가 이 곡을 다시 불러도 원곡의 아우라를 결코 재현해낼 수 없을 것이다. 위대한 보컬이 비에 관해 남긴 위대한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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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

기실 이 곡은 리메이크다. 이승철이 부른 발라드 ‘잠도 오지 않는 밤에’가 원곡이다. 박광현이 작곡한 곡을 이승철이 먼저 불렀고, 다시 프로듀서 김창환과 김건모가 이 곡에 살을 붙여 커버를 한 것이다. 어쨌든 이 곡은 원곡에 비해 훨씬 ‘댄서블’한 느낌으로 재탄생되어 90년대 초반 가요계를 뒤흔들었다. 분명히 쫄깃한 리듬이 돋보이는 노래지만, 묘하게 슬픈 정서가 배어있는 것 같은, 아이러니한 인상의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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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하이 Feat. 윤하 ‘우산’

2008년 발표된 이후 이 곡 보다 더 사랑받은 비 노래가 또 있을까. 처음 이 곡을 들었을 때부터 나는 이 곡이 대박날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힙합 그룹이 이런 서정적인 음악을 할 때 더욱 빛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여기에 윤하의 목소리가 더해져 2008년 최고의 히트곡 하나를 완성해냈다. 연인 간의 사랑을 우산이라는 소재로 상징화한 가사 역시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