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키니, 선글라스, 양산 등
여름 필수 아이템의 유래

 

몸과 손을 가볍게 하고 다니고 싶은 계절. 하지만 꼭 챙겨야 할 여름 필수 아이템 때문이라도 가방은 꼭 들기 마련이다. 자외선 차단제는 기본에다 선글라스와 양산까지, 그러고 보니 챙길 것이 꽤 많아지는 요즘이다. 휴가 갈 때면 상황은 더 복잡해진다. 1년을 기다린 만큼 바캉스에서 비키니 정도는 입어줘야 하고, 그에 맞는 시원한 비치룩도 감각 넘치게 준비해둬야 한다. 그러면서 생각해본다. 그 옛날, 이 많은 여름 아이템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이 더위를 버텼을까?

 

 

미국의 핵실험을 보고 영감 얻은 비키니

작열하는 태양에 맞서는 여름 아이템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비키니이다. 원피스 수영복도 민망해하던 과거와 달리,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들의 비키니는 더더욱 아찔하고 대담해진다. 그도 그럴 것이 이너웨어도 대놓고 노출하는 시대인지라, 비키니의 진화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080102

 

한데 이 비키니의 탄생은 의외의 장소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태평양 중앙과 마셜 제도에 위치한 비키니 환초((Bikini Atoll)는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미국의 핵 실험 장소였던 곳. 따라서 이곳은 전 세계 뉴스에 곧잘 보도되던 지역이었는데, 파리의 한 디자이너는 이 어마 무시한 실험 장면에서 오늘날의 비키니 모양을 처음 발견했던 것이다.

 

원자폭탄을 투하해 핵실험하던 장면을 한 번이라도 봤던 기억이 있다면, 아마도 비키니와 흡사한 그 모양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이 핵실험 장면을 보고,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루이 레아는 비키니의 이름도 지역에서 그대로 따와 더욱더 논란을 부추긴 격이 됐다. 비난은 불 보듯 빤했다. 로마 교황청은 ‘부도덕한 옷’이라고 비난하고 나섰고, 유럽 몇 개의 국가는 파격적인 디자인에 놀라 ‘상용이 되더라도 절대로 입어선 안 된다’는 법 규정을 급히 만들어야 했다.

 

Lady

 

하지만 당시에도 앞서나가던 패션피플은 있었을 터. 처음엔 마니아층을 형성하더니만, 1950년이 훌쩍 지나자 유럽 전 역과 미국까지 이 비키니가 퍼져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엔 1961년부터 시판되기 시작했지만, 미스코리아의 그 푸른 수영복 때문이었을까. 20~30년 동안 원피스 수영복의 그늘에 가려져 있어야했다.

 

 

선글라스의 시작은 송나라 판관들의 업무용 검정 안경

대부분의 여름 아이템이 서양에서 들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서양문물 흡수를 놓고 여러 논란들이 매번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한데 여름철 최고 필수 아이템인 선글라스는 동양에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꽤나 흥미로워진다.

송나라 시절, 판관들이 죄인들을 심문할 때 자신의 표정을 감추기 위해 연수정을 이용해 검은 안경을 착용했다. 그렇다보니 그 시절 그 안경들은 햇빛 차단용이 아닌, 죄인 심문할 때만 쓰던 업무용인 셈이었다. 이에 반해 서양에선 1936년 미 육군항공단이 그 시초라 할 수 있다. 구름 위를 비행해야하는 조종사들은 고공비행 때마다 강렬한 햇빛 때문에 매번 고생해야했다. 미 육군항공단은 조종사를 위한 보안경이 시급했고, 광학 기구 업체이던 바슈룸(Bausch & Lomb)에 눈부심 방지용 안경을 제작 의뢰하게 됐다.

 

080104

 

오늘날의 선글라스는 햇빛 차단도 중요하지만, 자외선 차단 등 다양한 기능과 멋까지 더해졌다. 그 시절 조종사들이 쓰던 선글라스는 지금도 빈티지나 복고 스타일을 지향하는 패션피플들에게는 여전히 머스트 해브 아이템일 수밖에 없다.

처음 양산이 등장한 역사 속 사진은 1907년 촬영

미국에서 눈부심 방지용 안경이 개발되던 때, 국내 부인들 사이에서는 양산이 한창 보급되고 있었다. 첫 시작은 1907년쯤으로 추측하는데, 고종의 사랑을 받았던 영친왕의 모후인 엄 귀비가 남긴 사진 속에서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080108
엄 귀비 양장 사진

 

한복이 아닌 양장을 하고 흰 장갑을 낀 손에 양산을 든 엄 귀비. 참고로 엄 귀비는 명성황후에 의해 궁에서 쫓겨나 사가에서 살다가, 명성황후가 시해된 후 다시 환궁했던 인물이다.

엄 귀비는 고종황제 사이에 1897년 영친왕을 낳았고, 고종이 강제 퇴위된 1907년 7월 사이에 이 양산을 든 사진을 남겼다. 이후 양산은 부유한 집안의 부인들이 얼굴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 많이 사용되다, 한국전쟁 전후엔 수많은 여성들의 여름철 필수 아이템으로 자릴 잡기 시작했다. 햇볕이 강한 날엔 양산 쓴 여성들의 모습은 길거리에서 흔히 마주치는 풍경 중 하나가 될 정도.

 

080105

 

1970년부터는 이 양산은 여성들 사이에서 오늘날 명품 가방과도 같은 하나의 사치품과도 같은 역할도 해서, 다양한 수가 놓인 고급지고 예쁜 양산도 심심치 않게 발견되기도 했다.

 

 

탐험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나오는 중국 빙수

가수 윤종신의 노래 ‘빙수야~ 팥빙수야~’ 구절이 계속 떠오르는 계절. 커피를 마시러 가던 카페에서도 다양한 빙수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도 한다.
여름철 한시적인 계절 메뉴 빙수는 세월이 흐를수록 다양한 맛과 함께 새롭게 재탄생되고 있다. 팥빙수와 과일빙수가 대세이던 예전과 달리, 요즘엔 단호박 빙수‧ 망고 빙수‧ 홍차빙수 등 다양한 식자재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연일 일궈내고 있는 분위기이다.

 

080106 some fresh organic blueberries and yoghurt in a glass

 

빙수의 유래는 기원전 3000년경까지 올라가야 한다. 중국에서 눈이나 얼음에 꿀과 과일즙을 넣고 먹은 것을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그 제조법을 베네치아로 가져가 세상에 널리 전파했던 것. 또한 자신의 여행담을 기록한 <동방견문록>을 통해 중국 베이징에서 먹던 그 빙수의 맛과 제조 방법을 상세히 기록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조선시대에 서빙고의 얼음을 갖고, 잘게 부수어 화채 등을 만든 것이 그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서빙고는 조선시대에 얼음의 채취‧보존‧출납을 맡아보던 관아인데, 지금의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이 그 위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