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평론가 정석희
“삼포세대, 진정한 자유를 응원한다!”

 

인기예능프로그램인 <나혼자 산다>와 <우리 결혼했어요>, <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의 주 시청자는 삼포세대들이라고 한다. 삼포세대(三抛世代)란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말한다. 그들이 독립, 연애, 결혼, 육아 등을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중문화평론가 정석희 씨를 통해 삼포세대와 자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요즘 2030세대는 스스로를 돌볼 여유가 없다고 한다. 치솟는 물가, 등록금, 취업난, 집값 등 경제적, 사회적 압박 때문이다. 사회에서 삼포세대라 불리는 그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하거나 기약 없이 미룬다. 삼포세대는 정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것일까? 포기와 자유의 경계는 애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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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삼포세대 사이에서 인기 있는 TV프로그램은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등  연애와 결혼, 출산을 다루는 일상·관찰 예능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관찰예능은 무언가를 지시하기보다 카메라로 관찰하며 보는 TV프로그램입니다. 이런 관찰예능의 효시로 볼 수 있는 <아빠 어디가>가 성공하자 이후에 <나 혼자 산다>, <슈퍼맨이 돌아왔다>, <오! 마이 베이비>, <아빠를 부탁해>, <꽃보다 할배> 등의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요즘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젊은이들이 경제적 압박 없이 연애와 결혼, 출산을 해낸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이런 일상예능을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죠. TV를 통해 스스로 위안 받는 법을 찾은 것이라고 봅니다.

 

 

Q. 연애·결혼·출산을 다룬 예능프로그램의 장·단점은 무엇일까요?

<아빠 어디가>가 처음 인기를 끌었을 때 미혼의 2030세대 사이에서 실제로 ‘결혼을 해볼까?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볼까?’라는 말들을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부모가 되어 아이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프로그램이 자극을 준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줄어들고 있는 사회에 도움이 되었겠죠. 단점이라면 ‘상대적 박탈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빠 어디가>와 <슈퍼맨이 돌아왔다>같은 프로그램은 아기들이 예쁘고 육아과정도 무척 재미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육아는 너무 완벽하죠. 환상이란 것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TV속의 삶이 자신의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는 관찰을 넘어 소통하는 프로그램들이 나오고 있고 반응도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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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통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 좀 더 부탁드립니다.

최근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인기비결은 관찰을 넘어 출연자와 네티즌들이 서로 소통하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출연한 연예인들이 인터넷 생방송으로 가장 많은 시청자 수를 얻는 사람이 우승하는 방식인데요. 백종원 씨가 연이어 1위를 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가 네티즌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던 힘은 ‘소통’에 있습니다. 그는 네티즌들의 의견을 바로바로 수렴하고 반영합니다. 또 대화하면서 요리도 하죠. 최근 ‘핫이슈’인 ‘먹방’, ‘쿡방’을 진행하면서 말입니다. 시청자와 네티즌들은 TV를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백종원 씨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시대가 힘들어진 만큼, 관찰을 넘어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지금 그 단계로 넘어가는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Q. 관찰예능에 이어 ‘먹방(먹는 방송)’이나 ‘쿡방(요리 방송)’이 삼포세대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삼포세대들이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예능방송이 먹방에서 쿡방으로 진화했습니다. 먹방은 밥을 해줄 사람이 없거나 같이 먹을 사람 없을 경우 그 방송을 혼자 보며 대리만족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 요리를 직접 하는 쿡방입니다.

<냉장고를 부탁해>가 쿡방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전문 요리사가 등장하지만 그동안의 요리프로그램처럼 어렵거나 화려하지 않습니다. 우리 집 냉장고 안에 있는 식재료와 간단한 레시피로 요리를 합니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요리를 망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죠. 누구나 쉽게 ‘나도 해서 먹어 볼 수 있겠구나’라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편의점용 인스턴트 음식을 활용한 요리라든가 된장라면 등은 정말 누구나 손쉽게 따라할 수 있습니다. 요리 한번 해본 적 없는 남자, 또는 혼자 사는 사람들이 집에서 따라 하기에 충분한 레시피죠.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의 경험을 SNS에 올리며 서로의 경험과 팁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먹방과 쿡방 모두, 소통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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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오! 마이 베이비>에 관련한 댓글을 살펴보면 아이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들의 재롱을 통해 위안을 받는 댓글이 많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의 ‘만족’ 범위가 상당히 광범위하고 세분화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큰 것이 아닌 작은 것에 만족하는 모습이 다소 이해가 안갈 수도 있겠습니다. 예전의 사회 분위기는 열심히 돈을 모아서 집을 사거나, 열심히 공부해 좋은 직장을 얻는 획일화된 목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노력한다고 해서 그 단계까지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그런 현실에 얽매이기보다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을 찾는 현상이 반영된 것 같습니다.

 

 

Q. 일본에도 한국의 삼포세대와 비슷한 사토리세대가 있다는데, 무엇이 다를까요?

사토리는 ‘깨달음’, ‘득도’라는 뜻입니다. 즉, 사토리세대는 마치 득도한 것처럼 욕망을 억제하며 사는 젊은 세대로 정의된다고 합니다. 그들은 물질적 풍요에 관심이 없고 돈과 출세에도 욕심이 없습니다.

좋은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의식적으로 조금 더 개화된 것 같습니다. 일본도 사토리세대에 대한 의견이 다분합니다. 미래를 현실적으로 본다는 의견과 구매 의욕을 상실해 기업 활동에 위협을 줄 것이라는 의견이 공존하죠. 일본은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만으로 생활하는 젊은이들인 프리타족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생활이 가능하니, 꿈이나 야망을 가질 필요를 못 느끼는 거죠. 한국은 아직까지 정규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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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유와 포기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삼포세대가 사는 삶의 방식에 대해 ‘현실 도피’또는 ‘흥미의 변화’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의견 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생각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테니까요. 인생의 과정이 모두 같을 수 없습니다. 예전에는 관습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분위기가 컸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취업을 하고 결혼을 했죠. 심지어 출산하는 시기도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습니다.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도 예전보다는 많이 관대해졌고요. 틀이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되는 삶을 살아가려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Q.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삼포세대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요?

모두가 비슷한 길을 갈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은 가치관도 자유로워지고, 조금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편해진 것 같습니다. 삼포세대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은 사회적, 경제적 압박에서 벗어나 각자의 자유를 찾는 시도를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정한 자유란 자기 개성을 살리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삶이 ‘자유’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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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30세대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에 충실하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당장은 남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이 자신의 재산이 되거든요. 남들보다 빨리 성공하는 삶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찾아온 성공은 제대로 누리지 못하니까요. 원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하다보면 자신의 삶이 긍정적인 결과로 향해가고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