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들] 낮과 밤 다른 복합문화공간
제비다방 기획가 오상훈

 

낮과 밤의 얼굴이 다른 카페를 아는가? 홍대 근처 상수동 ‘제비다방’은 낮에는 카페로 운영되다, 저녁 8시가 되면 맥주를 파는 인디밴드 공연장이 된다. 카페와 공연장이 한 공간에 공존할 수 있는 곳, 당장은 상상하기 어렵다. 제비다방은 아담한 공간이다.

대신 1층과 지하가 연결되도록 구멍을 뚫었다. 덕분에 이곳은 더 넓어 보이고, 더 특별해졌다. 말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화창한 여름날, 제비다방을 기획한 오상훈 씨를 만나 눈으로 직접 보고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약속을 잡고 제비다방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봤다. 딱 봐도 자유롭고 여유로운 분위기다. 다방 안으로 들어가니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친절하지도 않게 점원이 인사한다. 그 인사가 편하게 느껴졌다. 지하로 내려가니 영화 속 한 장면이 펼쳐지는 것 같은 그림이 나온다. 그렇게 묘한 분위기에 빠져 내부 인테리어를 구경하고 있을 때, 오상훈 기획가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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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비다방’은 문화지형연구소 ‘씨티알’에서 진행하는 사업의 일환이라 들었습니다. 씨티알과 오상훈 교수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씨티알은 문화지형연구소로 문화를 다방면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문화공동체입니다. 이곳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고 올해로 십 년째가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회사의 모습을 갖추지는 않았습니다.

회화나 음악 등을 하는 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건축,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의 개념들을 콜라보레이션 하는 작업들을 해왔습니다. 씨티알과 제비다방은 한 건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무실에서 건축, 출판, 음악 등과 관련한 콘텐츠를 만들면 제비다방인 지하와 1층이 테스트사이트가 되는 방식입니다.

 

 

Q. ‘제비다방’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비다방이 탄생하기 전에는 레몬살롱이라는 문화공간을 만들어서 지인들과 공유를 했었습니다. 오픈 된 공간은 아니었는데요. 음악, 미술, 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모여 작업을 하거나 토론과 공연 등의 활동을 했습니다. 가끔 술자리도 갖고요. 우리가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었죠. 레몬살롱이 발전해 지금의 제비다방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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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비다방’은 1933년 소설가 이상이 열었던 예술가들의 토론 장소로 기억합니다. 제비다방이라고 이름을 지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사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1930년대에는 제비다방이란 공간에서 문화를 공유하는 흐름이 있었을 것입니다. 굳이 연결 지어 생각해본다면 2000년대 상수동 제비다방만의 문화 활동이 존재할 것이란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의 제비다방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소비하며 개성 있게 즐기는 공간입니다.

 

 

Q. 낮은 카페, 밤은 인디밴드 공연장인 특별한 공간 ‘제비다방’ 탄생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저를 비롯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친구들 모두가 재미있고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레몬살롱의 연장선이지만 이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란 점이 달랐습니다.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었죠.

공동 기획한 오창훈 일러스트레이터는 제 동생으로, 낮과 밤이 다른 콘셉트의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낮에는 카페를, 밤에는 라이브공연을 하려면 공연장으로서 활용가치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상이 아닌 현실적으로 말입니다.

아담한 공간이지만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바닥에 구멍을 뚫어 지하와 지상을 연결해 넓혔습니다. 동생과 제가 메인으로 공동기획을 하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친구들과 장기간의 토론과 협업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 제비다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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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제비다방’은 어떤 공간이라 생각하면 될까요?

제비다방은 비싼 돈을 가지고 즐기는 공간이 아닙니다. 적은 돈으로 충분히 즐기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공간을 지향합니다. 공연, 책, 커피와 술, 토론, 공부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담을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이고요.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시간과 에너지, 열정을 담아냈습니다. 마음 편히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Q. ‘제비다방’ 내부 설계와 인테리어를 담당하셨는데요. 어디서 영감을 얻으셨는지요?

미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친구이자 전문가들과 숱한 토론을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카페 겸 공연장을 만들겠다고 정하고 나니, 문득 바닥을 뚫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 쪽 전문가들의 조언을 참고하며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공연을 하면 벽에서 소리가 울리고 튀고 할 텐데 흡음재가 필요할 것이다’, ‘책장에 꽂힌 책들에게서 그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소리는 위까지 어떻게 올라가게 할 것인가’, ‘시각적인 느낌도 고려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이 발전되어 설계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설계의 영감은 협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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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재미있는 공간이다 보니 재미있는 일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제비다방 프로젝트는 처음 예상보다 일이 커진 경우인데요.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점점 지출이 많아져 고민이 많았습니다. 음료, 인테리어, 설계 등 모든 것을 잘해내려다 보니 마지막에는 간판을 만들 돈이 없었습니다.

지금 걸린 간판은 사실 저희가 직접 만든 것입니다. 멀리서 보면 그럴싸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남은 나뭇조각들을 붙여 탄생된 ‘웃픈(웃기고 슬픈)’ 간판입니다.

 

 

Q. 오후 8시가 되면 다방이 라이브 공연장인 ‘취한 제비’로 바뀝니다. 무료입장, 자율적 퇴장료 지불이라는 ‘후불제 공연’이라는 점이 특이합니다.

씨티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두가 창작자인 만큼 예술가들의 입장에 서서 기획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도 지금보다 더 힘든 시절을 겪었고요. 물론 완벽하지 않고 한계는 있습니다. 그래도 가능한 선에서 공연하는 친구들을 더 지지해주고 챙겨주고 싶은 마음인거죠.

처음에는 저희 생각대로 후불제 공연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연하는 뮤지션들도 만족할 정도로 모금함에 공연료가 쌓이고 있습니다. 공연이 끝나면, 제비다방에서는 뮤지션과 관객이 함께 이야기도 하고 간단히 술도 마시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공연이 끝난 후 자연스런 분위기에서 앙코르 공연이 가능하다는 점은 제비다방만의 특징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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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운영에 있어 경제적으로 살짝 부담이 될 것도 같은데요.

상업적인 부분은 씨티알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는 같이 어울려 놀 수 있는 놀이터입니다. 제비다방은 돈을 벌기 위해 운영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문화를 경제적인 수단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이 거창하거나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비다방과 다른 좋은 프로젝트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가치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제비다방은 오래전부터 꿈꿔온 공간을 현실로 만든 것입니다. 요즘처럼 각박한 자본주의에서는 보기 드문 공간이죠. 몇 시간 있어도 눈치 안 봐도 되고, 꼭 인원수에 맞게 주문을 해야 하는 상업적인 공간과는 태생부터가 다릅니다.

 

 

Q. 이제 3년이 됐는데, 3년 후 제비다방은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지요?

앞으로 3년, 6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변하기는 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도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이곳이 함께 문화를 즐기는 자연스런 문화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즐기는 문화 말입니다. 어른들을 위한 문화 놀이터로 초심을 잃지 않는 제비다방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