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장애’ 우리는 왜 결정하지 못하는가?

 

상담을 20여 년 정도 하다 보니 상담의 주제와 양상이 시대적으로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느낄 수가 있다. 그 변화 중 하나는 옛날과 달리 상담 첫 시간부터 중요한 선택을 대뜸 물어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아졌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제가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까요? 그만둬야 할까요?”나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닐까요?” 등의 질문들이다. 내담당자의 마음이나 문제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는데, 마치 점집에 온 것처럼 즉각적인 답을 알려달라니 상담자로선 당혹스러울 따름이다. 고민에 대한 조바심도 있겠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훈련이 잘 안 되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누가 대신 결정 좀 해주세요

 

nxious businessman looking at jumbled arrows with hands on head

 

직장을 다니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 H씨는 최근 몇 년 동안 여름 휴가철이 되면 스트레스가 커진다. 모처럼 가족들이랑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은데 가고 싶은 곳은 많고 좀 더 저렴한 여행을 하고 싶다보니, 결정을 내리는 것이 너무 어렵다. 올 해는 겨우 장소를 정했지만 최저가의 항공권을 구입하려다가 결국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비단 여행뿐만이 아니다. 청소기가 고장 나서 새 제품을 사는데도 애를 먹는다. 집안에는 먼지가 쌓여 간다. 하지만 여러 제품 중에 가장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사려다가 한 달 째 결정을 못하다 보니 대충 청소를 하고 있다. 아이의 어린이집을 고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친구와 약속장소를 정하는 것도 너무 어렵다. 매일 밥을 뭐 먹을지, 무엇을 입고 나갈 지도 늘 고민이다.

 

Healthy or unhealthy food choice

 

결국 ‘결정마비’에 빠져 아무 것도 못하거나 약속에 늦는 것이 다반사다. ‘후회 없는 결정’을 하려는 의도였지만 결국 매번 후회만 남는다. 이는 비단 H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많은 현대인들은 선택의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루고 주위에 묻는다. 장애 아닌 장애, ‘결정 장애’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왜 결정 장애가 늘어나는가?

사실 옛날에는 선택할 게 별로 없었다. 출생부터 장례까지 정해진 의례를 따라 일생을 살다보니 마치 한정식 코스처럼 나오는 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남들이 하는 것처럼 따라 하거나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그러나 급격한 사회변화는 삶의 방식을 바꾸어 놓았다. 집단과 규범은 약화되면서 선택의 결정권은 급격히 개인에게 이동하였다. 기술과 지식, 경제의 발달로 인해 선택지와 정보는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작 개인은 달라진 사회에 적응할 준비가 되지 못했다. 사회는 너무나 빨리 개인화 되었다. 그러나 개인은 정작 개별화가 되지 못한 채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지 그 내적 기준조차 모르고 살아간다. 그에 비해 타인과의 비교와 경쟁을 통한 욕망은 갈수록 부풀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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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에 대한 투자나 노력에 있어 대가 이상의 ‘1+1’ 결과를 원한다. 욕망의 과잉은 ‘욕망의 모순’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품질이 좋은 제품을 원해. 그러나 저렴해야 해’, ‘내 아이가 스스로 살아갔으면 해. 하지만 내 뜻에서 벗어나는 것은 싫어’, ‘난 살 찌는 것은 싫어. 그러나 움직이는 것도 싫어’, ‘난 외로운 건 싫어. 그러나 누군가를 신경 쓰며 살고 싶지 않아.’ 이렇듯 어느 것 하나 포기하고 싶지 않은 현대인들은 선택혼란의 악순환에 갇혀 버린다.

 

 

결정능력은 근육과 같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것은 선택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나의 선택은 곧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택이 모여 나의 인생이 되는 것이다. 즉, 선택이 바로 ‘자아’이고 ‘삶’인 것이다. 그러므로 결정을 회피하는 것은 ‘나’를 외면하고 ‘삶’을 회피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결정 장애를 겪고 있는 자신을 신중한 사람으로 미화함으로써 문제를 회피해간다. 혹은 타고난,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이라며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한다. 하지만 결정능력은 ‘근육’과 같다. 하면 할수록 강화되고, 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약화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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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 몰라서 결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은 결정하지 않기 때문에 잘 모르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 선택하면 늘 미련이 남고, 때로는 회복할 수 없는 실수를 할 수 있다. 우리가 결정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선택에 따른 시행착오를 통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것밖에는 없다.

결정을 잘 하려면 선택의 순간에 대한 과도한 가치부여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택을 할 때 많은 이들이 크게 착각하는 것이 있다. 결정하고 난 뒤에 따르는 미련과 아쉬움을 ‘잘못된 선택의 신호’로 해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선택은 미련과 아쉬움을 남긴다. 아무리 잘 한 선택이라도 결정 후에는 미련과 동요가 따른다. 그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선택의 본질이 그렇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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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순간이 무척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결과론적인 착시현상이다. 즉, 결과가 좋으면 선택을 잘 한 것이고, 결과가 나쁘면 선택을 잘못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선택의 순간보다 ‘선택 후 과정’이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결정을 내렸든 간에 자신의 선택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스스로 선택하자. 그리고 그 선택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 하자. 그리고 그 선택을 통해 ‘더 나은 선택’이 무엇인지를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