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사람들] 거실에서 1인극 인생이 펼쳐진다 – 김동수 연극배우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걸까? 어떻게 살아야 인생이 즐거워질까? 사람이라면 늘 하는 고민일 것이다. 인생은 좋은 일만, 나쁜 일만 계속 생기지 않는다. 운이 없어서도 능력이 모자라서도 아니다. 인생의 굴곡은 모든 사람이 겪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연극배우 김동수는 요즘 특별한 무대에 서고 있다. 바로 자신의 집인 종로구 연지동 다세대주택 2층에서 그는 열연 중이다. 자그마한 거실극장에서 그는 연기는 물론 조명·음향·의상 등 스태프 역할까지 한다. 자신의 집에서 한 평 극장을 펼치게 된 배우 김동수의 색다른 인생사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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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집에 배우가 산다>는 원로배우들이 설 무대가 사라지고 있는 연극계의 고민에서 출발했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원로연극인 활동수명 연장’을 위해 지난 5월부터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김동수 배우는 <옆집에 배우가 산다>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자신의 집에서 연극 <인생>을 펼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자신이 운영하던 소극장 김동수플레이하우스를 재정난 때문에 문을 닫아야했다. 지난여름에는 교통사고까지 두 번 겪으며 힘든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힘든 일이 왜 자신에게만 이렇게 연거푸 일어날까’라며 한 때는 낙심도 했었다. 하지만 그에게 한 평 극장 제의가 들어왔고, 그는 다시 인생의 희망을 갖기로 했다. 인간 김동수로는 힘들었지만 연극인 김동수로는 행복한 배우로 제 2의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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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옆집에 배우가 산다>는 원로배우들을 위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프로젝트 참가는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요?

올해 1월에 극장을 폐업했고, 6월에는 파산 신청도 했습니다. 이사도 가게 되었고요. 극장 폐업 후, 이래저래 고민하던 중에 연극인복지재단으로부터 <옆집에 배우가 산다> 프로젝트 참가 제안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집이나 카페 등 한 평짜리 무대에서 모노드라마 식으로 공연을 해 보자는 내용이었습니다.
발상이 참 특이하더라고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죠.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궁금했고요. 1인극 한 평 극장은 5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Q. 연극 <인생>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작년 7월과 10월에 제 소극장에서 <인생: 활착(活着)>이란 이름으로 이미 공연을 했었습니다. 연극 <인생>은 중국 작가 위화가 쓴 동명의 소설을 각색한 것입니다. 작년의 <인생: 활착>은 김동수 개인의 인생사와 작품 속 귀복의 인생사를 왔다 갔다 하며 공연을 펼쳤습니다. 두 사람의 인생을 교차 편집하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갔죠. 한 평 극장에서는 원작대로 극중 인물만 가지고 모노드라마로 갔습니다.

원작에 충실한 무대는 지금의 무대라 할 수 있죠. <인생>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잃고 늙은 소에 의지하며 사는 노인 ‘귀복’의 굴곡진 인생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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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직접 운영하시던 소극장 ‘김동수플레이하우스’의 폐관 후 재개하는 활동인지라 그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요?

재정난으로 20여 년간 운영하던 극장 문을 닫아야만 했습니다. <옆집에 배우가 산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름에 교통사고를 두 번이나 겪었습니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 후유증도 남은 상태고요.

아무래도 큰일을 여러 번 겪다보니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우울증도 왔었습니다. 의기소침해진다고 할까요? 올해는 운세가 좋아 일이 잘 풀린다고도 했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힘을 내서 연극을 해야 한다고 연극복지재단에서 용기를 불어줬습니다.

 

 

Q. 교통사고 후 9월부터 다시 연극을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직은 연기하시는데 불편하실 것 같습니다.

1차 사고 당시 오토바이와 충돌했습니다. 수술 후 회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2차 사고가 났습니다. 안면골절상이었습니다. 부서진 얼굴을 티타늄으로 고정시켰고 그 후유증으로 입 주변의 감각이 둔해졌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맛을 잘 모르겠고, 그 탓에 입맛이 없습니다. 회복하느라 여름 내내 말도 못하고 유동식만 먹었죠.

 

연극인복지재단에서 중단했던 공연을 다시 시작할 것을 권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막상 다시 시작하니, 기운이 생기더라고요. 삶의 욕구가 다시 생긴다고 할까요? 무기력했던 정신이 깨어나는 것 같았습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니 회복속도에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삶의 활력소를 찾은 것이죠. 아직은 잇몸 주변 신경이 경직되어 중모음 발음이 잘 안됩니다. 풀리는데 2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뼈에 금이 가면서 신경이 끊어져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요. 긍정적인 생활을 하다보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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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거실극장, 한 평 극장’이라는 발상이 참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이를 접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인생>에서는 제가 책을 읽어 주듯이 이야기를 합니다. 1인극 낭독이다 보니 장면이 다 상상이 된다고 하더군요. 배우들이 펼치는 공연과 관객들이 장면, 장면을 상상하는 공연이 차이점이라고 할까요? 그런 부분이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배우와 가까이 있으니 더 몰입하게 되고 말입니다. 마치 앞사람에게 이야기하듯 감정을 전달하게 되죠. 관객과의 호흡, 감정을 주고받는 느낌이 달라집니다. 한 평 극장의 수용인원은 10~15명 정도인데 모든 관객들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점도 특별한 것 같습니다.

 

 

Q. 혼자서 진행하다 보면 애로사항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 것 같습니다.

1, 2차 때는 기계 조작 미숙으로 음향이 나오지 않기도 했죠(웃음). 처음 시도했던 터라 익숙하지 않아 어색했습니다. 연기만 하던 사람이 조명과 음향 등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한다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결국 음향 없이 진행하기도 했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익숙해져 수월하게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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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7일자 연극 <인생>. 김동수 배우가 자신의 집에서 1인극을 펼치고 있다.

 

Q. 배우 혼자서 연극의 시작과 중간, 끝까지 모든 과정을 손수 준비합니다. 연극계 선배로서, 배우로서 색다른 경험이란 생각이 듭니다.

연극배우로서 이런 도전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연출이나 연기 중 한 가지만 전문적으로 해봤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도전이란 자체는 멋진 일 같습니다. 동시에 여러 가지 일을 신경 써야하는 만큼 더 집중을 하게 됩니다. 철두철미 자신을 몰입시켜 가야하죠. 한 평 극장을 통해 또 한 번 자신을 단련시키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배우로서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합니다. 이제는 숙달이 되어 여유가 생겼습니다. 뻔뻔해져 실수를 해도 아무렇지 않게 연기를 하고요(웃음). 혼자서 자유자재로 공연을 만들다보니 더 자유롭게 연기에 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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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옆집에 배우가 산다>를 하시면서 제안하고 싶거나 해보고 싶은 새로운 콘셉트의 연극 프로젝트가 있는지요?

새로운 기회이자 색다른 시도라서 한 평 극장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을 무대로 한다는 발상에 처음에는 걱정 반, 기대 반이었습니다. 정형화된 극장을 벗어나 집을 무대로 활용해 좀 더 다양한 공연을 펼치고 싶습니다. 공간을 좀 더 크게 마려하거나, 방을 레퍼토리에 맞게 꾸미기도 하고요. 1인극에서 2~3인극으로 폭을 넓혀도 될 것 같고요. 내년에 복지재단의 지원을 받지 못하더라도 집을 무대로 해 다양한 공연을 펼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옆집에 배우가 산다>에 같이 활동하시는 다른 배우 분들의 소감도 궁금합니다. 공통된 의견이 있는지요?

모두들 자신이 만든 공연에 대한 애정과 자긍심이 높습니다. 너무 뿌듯하니까요. 배우로서 자기의 브랜드를 하나 만들게 된 것이죠. 저 역시 그렇습니다. 연극배우는 오십이 넘어가면서 섭외가 덜 들어옵니다. 육십 대가 되면 더 그렇고요. 일반 극단에서는 나이 먹은 배우를 보기가 힘듭니다. 원로배우들은 그만큼 대우를 해줘야 하니까요. 출연료이나 연극관, 연기패턴, 화술 등이 안 맞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평 극장의 무대는 집이나 카페, 교회 등 다양합니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경제적이고요. 원로배우들이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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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분들에게 연극 <인생>을 권하고 싶은지요?

인생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인생을 좀 살아본 40~50대 관객들에게 더 크게 감정 전달이 될 것입니다. 노인에 관한 이야기이니까요. 연극 <인생>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등장인물들이 다 죽고 마지막에 주인공 하나만 남거든요. 주변에서 너무 슬프니 레퍼토리를 바꿔보면 어떠냐고 권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죠. 인생은 어차피 모두가 죽는 것 아니냐. 인생이야기를 하는 것인데 억지로 그럴 필요 없을 것 같다고 말이죠. 올해는 안 좋은 일과 좋은 일이 동시에 일어나 기억에 남는 해가 될 것 같습니다. 20대 때도 그랬지만 60대인 지금도 연극은 늘 제 인생에 있어 긍정의 에너지가 되고 있습니다.

 

[프로필]
1970년 기독교방송 성우로 데뷔한 김동수 배우 역시 비슷한 처지다. 연극뿐 아니라 100편 넘는 드라마·영화에도 출연했던 베테랑 배우다. 89년 초연한 연극 ‘오구’의 맏상주 역으로 그해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을 받았지만, 공연 기회는 점점 줄었다. 2000년부터 서울 대학로에서 운영했던 소극장 ‘김동수플레이하우스’도 올 1월 문을 닫았다. 현재는 <옆집에 배우가 산다> 프로젝트에 활동 중이며 연극 <인생>을 자신의 집에서 열연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