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동이나 북촌 한옥마을은 알아도 ‘소격동’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소격동이 화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4년 10월 가수 서태지가 <소격동>이란 곡명으로 아이유와 함께 두 개의 버전으로 앨범을 내면서부터다. 지난 과거가 문화란 매개체를 통해 대중들에게 기억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지도상으로 볼 때 소격동은 참 작다. 하지만 걷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는 곳이 바로 소격동이다. 한 해가 가는 것이 아쉬운가. 심란해지는 마음의 동요를 잠재우고 싶은가. 한해의 끝을 앞둔 11월, 걸을수록 조용한 상념에 빠져들게 되는 소격동 산책을 권하고 싶다.
‘나 그대와 둘이 걷던 그 좁은 골목계단을 홀로 걸어요. 그 옛날의 짙은 향기가 내 옆을 스치죠…’. 서정적인 가사와 신비로운 멜로디의 조합이 인상적이다. <소격동>은 아이유 버전이 먼저 출시되며 곡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타며 동네 이름이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곧이어 같은 곡의 서태지 버전이 나오자 소격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서태지가 ‘소격동을 기억하나요. 지금도 그대로 있죠’라고 부르는데 호기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있을까? 소격동의 향수와 상실이라는 아련한 감성을 전달하는 곡 <소격동>. 이날 골목투어는 서태지와 아이유가 부른 <소격동>을 번갈아 들으며 시작했다.
하늘과 땅, 별 그리고 소격동
종로구 소격동은 서태지가 유년기를 보낸 실제 장소이기도 하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동네 곳곳에는 옛 흔적과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소격동은 역사적으로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소격동’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때 도교의 제례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설치되었던 소격서(昭格署)에서 비롯되었다. 소격서는 조선시대 때 하늘과 땅, 별에 제사 지내는 도교의 초제를 맡았던 관아이다. 국가의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임진왜란 때 폐지되었다. 지금은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한 국군기무사령부가 1980년대에는 소격동에 있었다. 구 국군기무사령부 자리를 가보면 지금은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자리 잡고 있다. 또 같은 시대에는 이곳에서 ‘소격동사건’이라 불리는 ‘학원녹화사업’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디를 걷든 소격동이 느껴진다
현재의 소격동은 삼청동과 북촌 한옥마을에 인접해 있어 그 경계를 찾기가 쉽지 않다. 한 걸음 더 걸으면 삼청동이었다가, 뒷걸음치면 어느새 소격동이다. 굳이 따지자면 국군서울지구병원, 국립현대미술관, 삼청파출소, 키엘삼청점, 국대떡볶이 삼청동점을 잇는 곳이다.
걷다보면 자신이 삼청동에 있는지, 화동에 있는지, 소격동인지 구분 짓는 것이 딱히 큰 의미가 없음을 느낀다. 인접해 있는 만큼 골목 특유의 분위기는 비슷하다. 때문에 어디를 걷든 소격동의 운치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평소 걷던 삼청동 거리 대신 이곳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태지의 <소격동> 뮤직비디오를 찍은 촬영지가 나온다. 곡의 제목은 <소격동>이지만 촬영장소는 소격동과 삼청동, 가회동의 북촌일대를 촬영했다. 그동안 스쳐지나갔을 골목을 천천히 되뇌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격동> 뮤직비디오·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촬영지
<소격동> 뮤직비디오 촬영지는 고개를 들어 ‘코리아’라고 적힌 목욕탕 굴뚝을 찾으면 된다. 지금은 목욕탕이 아닌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되고 있다. ‘복정’ 터 계단을 올라 게스트하우스를 지나면 촬영지가 나온다. 삼청동에 위치한 ‘복정(福井)’터는 조선시대 물이 맑고 맛이 좋아 궁중에서 사용하던 우물이다. 대보름에 복정터의 물로 밥을 지어먹으면 일 년 내내 행운이 따른다고 해 일반인도 물을 기를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인기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과 최시원이 복정터 계단에서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극 중에서도 최시원이 황정음에게 깽깽이 발로 넘어지지 않고 계단을 지나가면 복이 온다고 농담을 한다. 복을 부르는 우물이라고 하니 복정터 계단을 경건한 마음으로 걷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골목투어를 시작할 때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쉽게 찾을 꺼라 생각한다. 하지만 소격동은 자신이 어디를 찾는지 자꾸 잊게 되는 골목이다. 소격동은 기와지붕과 푸른 하늘, 덩굴이 넘실대는 담, 작지만 아늑함을 전해주는 골목길 등 시선을 뺏는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훔쳐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이끌림이 있다고 할까? 이곳을 걷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게 된다. 무엇보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좁은 골목과 기와지붕 사이로 보이던 가을 하늘이 참 인상적이었다. 답답했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한 폭의 풍경화랄까? 가을의 끝을 알리는 11월이지만 아직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소격동에서 가을의 끝자락을 차분하게 마무리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