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올해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는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 좋았던 일, 즐거운 일이 많았던 한 해였어도 유난히 힘들고 지치던 그런 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다가오는 연말이 아쉽고, 더욱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그런 날 망원동을 찾아갔다.
어릴 적에는 꿈이 참 많았다. 아버지나 어머니, 어른들에겐 꿈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허황되고, 순수하고 치기에 부풀었던 어린 시절. 그런 감성을 지녔던 시절이 우리 모두에게 한 움큼씩은 있다. 요즘은 무엇이든 빨리 나왔다 사라진다. 음악도 맛집도 패션도 어느 것도 오래가질 못한다. 아니 오래 버티질 못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러나 망원동은 다르다. 이곳에 가면 아직도 향수가 느껴진다. 어렸을 때 어딜 가나 있었던, 오래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 오래된 간판과 상점, 그리고 그 안에 새롭게 들어선 작고 소담한 디자인 숍과 카페. 이곳에 화려하고 정형화된 번화가는 어울리지 않는다. 카메라를 목에 걸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Adele의 <Hello>를 들으며 무작정 걸었다.
소박해서 특별하다
망원역에 내려 발길 닫는 대로 걸었다. 역에서 올라오자마자 바로 보이는 골목길로 꺾어 들어갔다. 겨울이면 볼 수 있는 붕어빵이 반긴다. 망원동은 번화가도 세련된 동네도 아니다. 주택가, 과일가게, 슈퍼 등이 있는 지극히 질박한 동네다. 화려함도, 세련됨도, 깨끗함도 없는 오래된 동네지만, 요즘같이 무미건조한 시대에는 오히려 이런 곳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골목 초입 반지하 건물에 캘리그래피 카드나 엽서를 판매하는 디자인 팬시점이 눈에 띄었다. <아카시아>라는 이름의 가게는 여러 디자이너들의 팬시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캘리그래피와 그림를 활용한 카드나 편지, 병뚜껑을 활용한 바늘꽂이, 핸드메이드 털모자와 팔찌 등 다양하다. 여러 디자인 상품들을 함께 팔고 있기 때문에 구석구석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재미가 있다.
장애인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화가의 그림을 카드로 제작해 팔고 있는데, 이것이 이곳에서 ‘미는 상품’이라고 한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이 함께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공생과 나눔의 예술이 한 공간에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작고 느리다
작고 느린 상점이라는 콘셉트의 <소쿠리>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소쿠리는 두 사람이 운영하고 있다. 친구가 일하는 카페 앞에 잠시 열었던 <이동상점 소쿠리>가 현재 모습의 시작점이 되었다. 한 명은 캔들을, 또 다른 한명은 뜨개질로 직접 뜬 모자 등을 온라인 숍에서 판매했다. 그 둘이 의기투합해 탄생한 곳이 바로 망원동 소쿠리다.
정갈하게 정리정돈 된 인테리어와 소박하고 작은 상품들이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천연 캔들과 뜨개질한 모자, 천가방, 앙증맞은 인테리어 소품 등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캔들 클래스는 숍 안쪽에서 진행한다.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카드와 함께 선물하기 좋은 소품들이 많다.
함께 소통하고 즐기다
망원동은 TV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출연 중인 가수 육중완이 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골목을 걷다보면 육중완이 평소 장을 본다는 ‘망원시장’도 볼 수 있다. 망원시장은 주택가에 가깝게 위치해 있다. 크로켓과 닭강정 등의 주전부리부터 홍어와 족발에 이르기까지 먹을 것이 지천이다. 시장이지만 화장품 브랜드숍도 있다. 카드결제도 가능하다.
망원시장에서 나와 길을 건너 좀 올라오면 예상하지 못한 곳에 정말 작은 가게들이 있다. 대지약국 골목으로 들어서면 밖에서 내부가 한 눈에 들여다보이는 카페와 책방, 음식점, 갤러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스몰커피>는 이름처럼 정말 작은 카페다. 작아서 답답할 것 같은데 막상 들어가 보면 희한하게 여유가 느껴진다. 단골손님들도 꽤 있다. 간판은 따로 없다. 가게 현관문 위쪽 창문에 아주 작은 글씨로 스몰커피라고 적은 것이 전부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데, 유리벽에 그려진 고양이를 찾는 것이 더 빠르다.
가게는 작지만 속은 알차다. 손님들을 위해 책과 잡지를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에스프레소와 핸드드립, 더치커피, 생과일음료까지 메뉴도 갖출 건 다 갖추고 있다. 몇 걸음만 가면 책방과 갤러리가 나온다. SNS로 카페와 책방, 갤러리가 동시에 심야오픈을 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고 한다.
마음의 여유를 찾다
골목을 나와 다시 위로 올라가면 통유리로 된 <817 워크샵>이 있다. 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카페이다. 특이한 점은 남편은 위층에서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아래 1층에서는 부인이 카페를 운영한다.
카페인데 들어오면 메뉴판보다는 인테리어 소품에 눈이 더 간다. 꽃집에 왔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입구에는 다양한 화분들로, 선반에는 선인장들로 가득하다. 카페 가운데에는 긴 테이블을 놓았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핸드메이드 가죽 제품들과 뜨개질 인테리어 소품 등이 올려져 있다. 커피와 차를 파는 카페지만 망원동 디자이너들의 소품들도 함께 판매한다. 커피만 구매하면 음식 반입도 가능하다. 옥상 개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11시까지. 날이 따뜻해지면 옥상에서 브런치를 즐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