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시리즈는 그 시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빠질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시대 대중가요는 오랫동안 잊고 왔는데도 어느새 쉽게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게 되고, 자연스럽게 그 때의 일들과 친구들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꼭 28년. 어느새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 뜨거운 청춘을 보낸 기억 때문인지, 모든 게 또렷하기만 하다. 조금은 불편하고 촌스러워도 마냥 그리운 1980년대의 정겨운 아이템.
바람을 넘어, 열풍이 된 복고
1988년! 여전히 냉기 가득했지만 가슴이 뜨거웠고, 넉넉하진 않았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던 시절. 요즘과 비교하자면 구석기 시대와 다를 게 없던 명백한 아날로그의 시대. 그래도 그때의 청춘들은 가장 최첨단을 열어가고 있었다던 이미연의 내레이션. 화면에는 위아래 청청패션을 입고 워크맨으로 신해철 노래를 듣던 당시의 청춘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이 인기를 끌자, 배우 이서진도 1980년 패션을 입고, 그 시절 풍경으로 한 운동화 광고에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젠 광고마저도 1980년 그 시절로 돌아가려는 신호탄 같다. <응답하라 1994>때도 분명히 복고 바람이 일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바람을 넘어, 열풍으로 치닫고 있는 분위기이다.
01. 카세트 라디오
1회부터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아이템은 라디오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카세트. 지금이야 스마트폰 하나로 라디오도 음악도 손쉽게 듣지만, 당시만 해도 휴대용 워크맨은 있는 집 자식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었기에, 온 가족이 함께 듣는 카세트는 TV 다음으로 꼭 필요했던 아이템이었다. 그렇다보니 야외 나들이나 수학여행 때는 이 카세트를 통째로 들고 가던 모습을 기차역 인근에선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CD 플레이어가 장착된 카세트가 판매되고 있는 상황. 단 오래된 차종에는 여전히 카세트테이프 기기가 있다 보니, 일부 고속도로 휴게소엔 흘러간 팝송과 가요 위주의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02. 잠옷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많이 구입하는 게 트레이닝복이 아닐까. 그러면서 굳이 잠옷이 필요 없어진지 오래이다. 여성은 분홍색, 남성은 푸른 계열의 잠옷을 너나 할 것 없이 입었던 그 시절. 집 앞 구멍가게 심부름을 갈 때, 잠옷에 외투만 걸쳐 입곤 급하게 다녀오던 기억 그리고 수학여행을 가더라도 이 잠옷은 꼭 가져갔던 것이 떠오른다. 극중에선 주인공 덕선이가 가장 즐겨 입는 패션이 됐지만, 남학생들은 교련복이 다양하게 활용되던 시절이기도 했다.
03. 필름 카메라
주인공들의 경주 수학여행. 집안의 가보나 다름없던 카메라를 덕선인 기차에서 놓고 내린다. 잊어먹지 말라는 부모님의 간곡한 당부가 떠올라서인지, 경주역에 도착하자만 울음을 터트리는 덕선. 그 시절, 필름을 넣던 카메라는 상당히 고가품 중 하나임에 분명했다.
그때도 일본에서 넘어온 카메라가 특히나 비쌌는데, 조리개 등이 앞에 장착되어 있는 건 더더욱 값이 나가던 물건. 36번을 촬영할 수 있는 필름을 넣어야 했고, 촬영이 다 되면 절대로 카메라 뚜껑을 함부로 열어서도 안됐다. 잘못하다간 빛이 들어가 모든 추억이 한 순간에 날아갔기 때문이다.
04. 전축과 LP판
정봉과 정환의 엄마, 라미란. 그녀는 쌍문동 골목에서 가장 인심 넉넉한 아줌마이다. 조금은 드센 그녀에게도 청춘은 있었다. LP판으로 비발디의 선율에 맞춰,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던 그녀의 우아한 모습.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 있지만 당시엔, 주인집의 커다란 전축은 부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스피커 두개까지 양옆으로 나란히 놓여 거실 한쪽을 다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전축. 그 앞에서 프림과 설탕까지 듬뿍 넣은 달달한 커피 한 잔은 좀 산 다는 집에서나 볼 수 있던 호사스러움이었다. 아들 정봉이 열심히 모으던 대학가요제 LP판 때문인지, 요즘은 희귀한 LP판 수집이 다시 붐을 일으킬 전망이다.
05. 제도 샤프
지금도 학생들은 샤프를 쓸까? 손으로 뭔가를 쓰는 게 어색해진 지금, 자신의 글씨체가 어떠한지 모르고 사는 것도 같다. 컴퓨터가 없고, 휴대 전화도 없던 시절, 좋은 샤프는 모든 학생의 잇 아이템이나 다름없었다. 일제와 미제란 이름으로 바다 넘어온 샤프들도 인기가 있었지만, 가장 보편화된 샤프는 설계사들이 사용했을 것 같은 제도 샤프가 아니었을까. ‘내게도 사랑이~’ 하트 모양에 샤프심을 길게 뽑곤, 조심스레 색을 칠하던 덕선의 극중 모습은 80년대였기에 가능했던 훈훈한 아날로그 감성이다.
06. 우표 수집
주인집 첫째 아들 정봉의 캐릭터도 심상치 않다. 그 시절의 모습을 가장 완벽하게 살려내는 인물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 뭐 하나에 꽃이면 자신이 6수생이란 걸 망각하고, 아둔하고 무모한(?)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런데도 마냥 정겨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행한 전자오락, 과자 스티커의 ‘한 봉지 더’, 포스터와 우표 수집 등은 그 시절을 지나쳐온 사람이하면 누구나 경험했을 일이기 때문이다. 가장 압권은 7수를 맞이한 새해 초. 행운의 편지를 받곤 땀 뻘뻘 흘리며 작성하는 모습이지 않았을까.
07. 붕어빵과 군밤, 그리고 소시지 반찬
드라마의 열풍으로 그 시절 먹을거리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고 있다. 그중 최택 아빠와 선우 엄마의 로맨스가 처음 감지된 강남 붕어빵. 그리고 영어 알파벳도 읽지 못하는 엄마의 씁쓸한 마음을 훈훈하게 채워준 정환의 군밤은 <응팔> 보면서 가장 많이 먹는 간식이 됐다. 이밖에 분홍빛 소시지는 다시 찾게 되는 추억 속 도시락 반찬이 되어, 이미 편의점 등의 도시락 코너에서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