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가 등장하기 전, 공중전화는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소통수단이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 이용해야 했기에 동전지갑은 필수였으며, 이후 등장한 것이 선불 전화카드였다. 이 전화카드 뒷면에는 다양한 풍경은 물론 특이한 캐릭터까지 등장해, 다 쓰고도 모으는 재미까지 쏠쏠했다. 한데, 휴대전화의 발 빠른 보급화로 흔하게 보던 공중전화 부스가 하나둘 사라지거나 그나마 있는 것도 무방비로 방치 되어왔다. 한때 처치곤란, 큰 골칫거리였던 이 공중전화 부스는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로 변신하기까지 한다.
동전에서 전화카드로 진화한 공중전화 부스
<응답하라 1988>만 보더라도 그 시절 공중전화는 붉은 빛을 띠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극중 성보라가 학생운동하다 잡혀, 이후 버려진 곳은 경기도의 외곽. 누구의 도움 없이는 서울 쌍문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처지인데도, 다행이도 주머니 속엔 10원짜리 동전이 여러 개가 있었다. 휴대전화 하나로 결제까지 가능해진 지금을 떠올리면, 그 시절엔 10원짜리 몇 개는 위급한 상황을 가까스로 모면할 수 있는 절대 필수품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1988년 전후로 지금의 공중전화 부스는 거리 곳곳에 설치된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다보니 서울올림픽은 우리의 삶 여러 개를 순식간에 갈아 바꾼, 커다란 분수령과도 같은 시기였던 것 같다. 외국인도 이용할 수 있는 그럴듯한 공중전화 부스가 들어서게 됐고, 거리의 소음에서 완벽하게 차단돼 편하게 상대방과 통화할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변화였던 것 같다.
게다가 같은 지역만 전화할 수 있었던 붉은 빛 공중전화에서 벗어나, 부스 안 은색의 공중전화는 전국은 물론 해외로까지 이용이 가능했다. 부스 안에는 여러 스티커가 붙여있었는데, 각 지역의 지역번호는 물론, 해외전화 이용 방법 등이 깨알같이 붙여있기도 했다. 그러다 전화카드가 등장했고, 전화카드 전용 부스까지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시티폰도 공중전화 부스 바로 옆에서만 통화 가능
<응답하라 1994>에는 시티폰이 등장했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영원한 아버지 성동일이 시티폰 주식에 거금을 투자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휴지조각이 됐던 이야기는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는 대목이다. 한데 시티폰 등장은 당시 이후 바뀌어질 세상에 커다한 예고편과도 같았다. 호출기로 연락을 받곤, 시티폰으로 전화를 걸던 그 당시 풍경들. 재미났던 것은 이 시티폰 통화도 공중전화 부스 바로 옆에서만 통화가 가능했었는데, 이는 지금의 기지국과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하면 될 듯하다.
그때만 해도 공중전화 부스가 이처럼 천덕꾸러기로 전락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도 사실. 게다가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공중전화 부스는 어느새 거리의 흉물로 변해, 각 지자체는 끊이질 않는 민원 세례를 받아야했다.
부스 문이 굳게 닫히고 112 신고까지 원스톱
그동안 이 공중전화 부스를 놓고 그냥 치워야 하는지 아니면 새롭게 변신시켜야 하는지를 놓고 각계각층의 논의와 노력이 있어왔다. 그러던 중 지난 가을, 이 공중전화가 여성들을 지켜주는 수호신 역할을 한다는 새로운 소식을 접하게 됐다. 인적이 드문 야심한 시간 골목길. 젊은 여성은 검은(?) 남성에게 쫓기게 된다.
이 아찔한 순간, 여성은 가까스로 공중전화 부스로 몸을 피하게 됐고, 부스 안으로 들어간 후엔 비상벨 버튼을 바로 눌러야했다. 비상벨 버튼을 누르면 부스 안 슬라이드 문은 굳게 닫히는데, 이때 점멸등이 켜지고 요란한 사이렌까지 울린다. 그리곤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112 신고까지 순식간에 이뤄진다. 더욱이 부스 안과 밖은 CCTV까지 있어, 범인이 가까이 다가오면 검거에 더더욱 도움이 된다.
금융서비스와 편의 시설까지 확대해 나갈 예정
여성들의 안심부스로 한순간에 이미지 변신에 성공하자, 여기저기서 그간의 골칫거리를 갖고 다양하게 활용하기 시작했다. 전기차 보급률이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보니, 서울시는 시범적으로 3개 지역의 공중전화 부스에 전기차 충전 시설을 만들게 됐다.
또 서울 성동구에서는 공중전화 부스를 개조해 무인도서관을 만들었고, 서울 시내의 한 공중전화 부스에는 자동심장충격기가 비치돼, 응급 환자들이 언제든 이용하게끔 시설도 구비해 놨다. 지난 1999년, 15만 여대를 정점으로 점점 줄어들기 시작한 공중전화는 최근 그 수가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유지 보수비용만도 매년 100억 원 넘게 들어왔다. 무턱대고 없앨 수도 없다보니 최근의 사례처럼 다양한 용도를 찾게 된 것인데, 서울시는 앞으로도 이 공중전화 부스에 여러 사업과 연계할 예정이라 했다.
특히 현금자동입출금기 등의 금융서비스나, 인터넷 접속이나 휴대전화 충전소 등 다양한 편의 시설까지 계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반응과 호응이 좋은 안심부스는 50곳 이상으로 점점 확대해나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