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으로 웹툰을 고르고 장소와 시간의 구애 없이 즐긴다. 웹툰 감상 후에는 사람들과 댓글로 소통도 한다. 만화가 종이 대신 웹을 만나 웹툰이라는 장르로 새롭게 변신하며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만화를 ‘애정(愛情)’하는 사람들에게 만화책 대신 ‘웹툰’이 대세가 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다양한 웹툰으로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전하는 레진엔터테인먼트의 ‘김승환 CCP(Chief Contents Producer)’를 만나 웹툰에 얽힌 그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레진엔터테인먼트에는 탄탄한 스토리와 위트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웹툰들이 많다. 그 이유는 바로 웹툰과 웹툰 작가들을 발굴하고 기획하는 전문가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CCP’라 불린다. 만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탄생한 기업인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김승환 CCP 역시 마찬가지다. 그도 어렸을 적부터 만화를 사랑했다. 그의 인생에서 만화를 빼면 이야기가 안 될 정도다. 만화를 좋아했지만 그는 건축학을 전공했다. 정해진 운명이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건축가가 아닌 만화 관련 일을 하고 있다.
Q.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 하시는 일에 대해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편집장이란 직함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치프 콘텐츠 프로듀서(CCP)’가 맞습니다. CCP들은 웹툰의 플랫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 서비스되는 웹툰들을 기획하고 섭외하는 일을 하고 있죠. 기성작가나 신인작가들을 섭외해 좋은 작품들을 심고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웹툰이 독자들 곁으로 무사히 안착할 수 있게 말입니다.
Q. 만화 관련 분야에서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세 가지를 좋아했습니다. 음악과 미술, 만화입니다. 한때는 만화가를 꿈꿨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진득하게 한 자리에 앉아 일에 몰두해야하는 만화가가 제 성향과 맞지 않는 것을 빨리 깨달았습니다(웃음). 그림을 전공하려다 건축학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건축가의 길을 걷는가 싶었죠.
어느 날 신문을 읽다가 만화잡지사인 학산문학사의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편집자를 뽑는 것을 보고는 뭐에 홀린 듯 이력서를 넣었습니다. 지원한 후 생각했습니다. ‘한번 해보고 재미있으면 계속 하자’라고요. 덜컥 합격을 했죠. 그렇게 만화를 기획하고 구성하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면 할수록 너무 재미있고 적성에 맞았습니다. 만화에 빠져 살던 제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을 만나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Q. 만화잡지라는 인쇄매체에서 웹툰이라는 온라인매체로 오기까지 많은 생각들이 스쳤을 것 같습니다.
이 일을 한지도 어느덧 15년이 흘렀네요. 2001년 만화잡지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책은 번창하던 시기였죠. 입사해서 처음 들었던 말이 만화시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출판 만화시장은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었거든요. 그것을 다시 올리겠다는 꿈을 갖고 정진했습니다. 만화잡지 속의 작품을 기획하고 꾸리느라 바빴죠. 덕분에 불안할 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만화시장의 변화는 만화잡지사를 나와 더 실감했습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대중화로 또 다른 장르인 웹툰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Q. 처음 웹툰이라는 신규시장을 받아들일 때 애로사항은 없었는지요?
만화책을 만들다 웹툰으로 건너오니 인력 풀이나 작품의 태생, 작가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도 달랐습니다. 단순한 예로 만화책은 책장을 넘기지만 웹툰은 화면을 스크롤로 내려 봅니다. 창작의 형태가 완전히 다른 것이죠. 방식의 차이를 적응하는데 6개월 정도 걸렸습니다. 방법은 웹툰을 많이 보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흥미 위주로 봤습니다. 적응되기 시작하면서 업무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부터는 이전부터 구축해왔던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있습니다. 웹툰이라는 장르도 매력적입니다.
Q. 국내 웹툰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스토리와 구성 등이 탄탄해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요?
웹툰을 넘어 드라마나 영화 등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웹툰의 형태로 데뷔한 작품이 인정을 받아 영화나 드라마의 형태로 재구성되는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불경기 속에서 한 콘텐츠가 다른 방식으로 재생산되는 것은 서로에게 좋은 일이니까요. 영화보다 웹툰 한 편을 잘 만드는 것이 비용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훨씬 적습니다. 시간과 인력, 투자 대비 비용 등 여러 면에서 효율성이 높죠. 웹툰을 통해 문화콘텐츠가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승환 CCP가 담당했던 웹툰들
Q. 만화책과 웹툰의 차이점이나 변한 점이 있는지요?
웹툰과 출판만화의 독자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만화책을 보던 사람이 웹툰을 보는 게 아니라, 포털 사용자가 웹툰을 본다고 할까요? 물론 만화책에 이어 웹툰을 보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만화책은 서점이나 대여점에 가서 돈을 지불해 사거나 빌려 봤습니다. 독자들이 돈을 지불한 만큼 그림과 내용 모두 훌륭해야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웹툰은 그 시작점이 다른 것 같습니다.
웹툰은 처음엔 무료였습니다. 때문에 만드는 이도, 보는 이도 모두 부담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웹툰은 그림과 스토리가 완벽할 필요가 없었죠. 그림은 약해도 스토리가 뛰어나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에서는 웹툰이 순기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재야에 숨어 있던 고수들이 많이 나왔다고 할까요?
Q. 인기 있는 웹툰의 공통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재미’에 있다고 봅니다. 나머지는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장르가 나뉘고요. 재미있어야 흥미를 유발하고 웃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웹툰을 보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Q. 대중들이 공감하는 작품은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합니다. 지금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요?
시대상이라는 표현보다 ‘그때그때의 취향이 있다’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취향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화라는 아이콘에서 권선징악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인간미가 느껴지는 악당 캐릭터가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그런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Q.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하다 보면 애착이 가는 작품이 생길 것 같습니다.
호흡이 잘 맞고 오랜 기간 동안 작업을 해온 작가의 작품들은 애착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로 ‘마사토끼’ 작가의 작품들이 그렇습니다. 출판만화부터 웹툰까지 계속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마사토끼 작가는 원래는 파워블로거였습니다. 본인 블로그에 미완성된 콘티를 올렸었죠. 작품이라 하기에 완성된 그림은 아니었고, 보면 이해 할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할까요?
블로그를 보고 그를 섭외했고 만화시장으로 끌어냈습니다. 만화잡지사에서 일을 할 때 저와 엇비슷하게 데뷔를 했죠. 그것을 계기로 다음과 네이버, 네이트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쳤습니다. 레진엔터테인먼트에서도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Q. 다양한 웹툰을 접하다 보면 소위 ‘감’이라는 것이 생길 텐데요. 잘 맞는 편이신지요?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쌓인 것 같습니다. 느낌이 오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물론 취향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CCP로서 작품을 볼 때 취향은 뒤로 하고 플랫폼과 시장, 독자만 생각하고 보려고 합니다. CCP이기 이전에 독자였던 만큼 초반에는 제 취향이 많이 반영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이란 존재는 빠지게 됩니다. 그동안 경험한 것들을 토대로 작품을 객관성 있게 바라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Q. 본인에게 ‘만화’란 어떤 의미인지요?
인생의 대부분에 만화가 늘 존재했습니다. 과거의 끝으로 가도 만화가 있습니다. 어릴 적 잠시 할머니 댁에서 보낸 시절이 종종 생각납니다. 숙모님께서 한글을 읽지 못했던 제게 동화책 대신 만화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슈퍼맨과 아톰, 헐크 등이었는데요. 혼자서 동화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도 동화책보다는 만화책이나 어린이용 추리소설을 좋아했습니다.
만화는 어릴 적부터 제게 재미를 주었고, 지금은 먹고 살게 해주는 경제활동이 되었습니다. 제 인생의 시작과 끝에 만화가 있습니다.
Q. 만화 관련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지요?
힘들었던 순간은 2003년에 처음으로 매체를 이동할 때였습니다. 신작을 데뷔시키고 단행본을 만들다보면 애착심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 작품들을 두고 옮기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너무 아쉽고 마음에서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런 일을 여러 번 겪다보니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행복했던 순간은 성과가 좋을 때입니다. 출판은 성과를 수치로 확인하기 힘듭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반면 웹툰은 디지털이니 결과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 학원/액션물 <소년이여>_ 병장 & 개그/일상물 <레바툰>_레바
Q. 마지막으로 추천하고픈 웹툰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웹툰은 건강한 취미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웹툰 <미생>처럼 직장인들의 애환을 달랬던 작품도 있고요. 웹툰을 통해 재미도 느끼시고, 스트레스도 해소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추천하고픈 웹툰은 <장인의 나라>, <4컷 용사>, <소년이여>, <조국과 민족>과 <매치스틱 트웬티> 등 마사토끼의 작품들입니다.
* About 김승환 CCP
현재 (주)레진엔터테인먼트의 웹툰과 작가를 발굴하고 런칭하는 CCP(Chief Contents Producer)로 활동하고 있다. (주)레진엔터테인먼트는 ‘성숙한 독자들을 위한 프리미엄 만화 서비스’라는 비전 아래 레진코믹스를 운영하는 기업이다. 2001년 학산문화사 만화잡지 <BOOKING>의 편집자로 시작해 <찬스>, <코믹콘서트>의 편집장과 디지털사업부 팀장을 역임했다. 윤태호 작가 <YAHOO>를 담당했고, <누가 울새를 죽였나?>로 마사토끼 작가를 데뷔시켰고, <카스텔라 레시피> 등 다수의 작품을 진행했다.
-레진코믹스 대표작: <마사토끼 작가 최신작들>, <4컷 용사>, <어린 그녀>, <레바툰>, <백도사>, <소년이여>, <살신성인> 등
-레진코믹스 일본 수출 담당 작품: <4컷 용사>, <어린 그녀>, <매치스틱 트웬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