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금을 받았던 두 번의 경험이 있다. 80년 초반, 홀로 삼남매를 어렵게 키우시던 어머니께서 큰 오빠가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며 기뻐하셨다. 장학금을 지급할 곳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기관이었다. 하지만 당시 중학생이었던 오빠는 창피하다는 이유로 장학금 수상을 거부했다. 덕분에 오빠가 어머니에게 흠씬 두들겨 맞던 기억이 아직도 영화처럼 남아있다. 오빠는 그 수상대에 오르는 순간 본인이 가난하다는 것,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게 되기 때문에 무척 속상해했을 것이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 나의 학비를 도와주던 동네 어른이 계셨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도와주시는 분에 대한 설명을 하며 감사의 편지를 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랫동안 마음속에 가져왔던 감사의 마음이 나도 모르게 꺼려지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때 당시 편지를 썼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다만 편지를 쓸까말까 고민하며 우울해했던 생각은 난다.
누군가는 도움을 필요로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도움을 주고자 한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난처해지는 경우가 많다. 기부금을 받아 전달해주는 ‘기관’이 생긴 이유가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한 고민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의 나눔 철학인 ‘체데카’에서도 수혜자와 기부자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주는 것을 가장 높은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기부금은 누군가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보다, 매개 역할을 하는 ‘기관’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 더 뜻 깊을 때가 있다. 기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전문성과 집중을 통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기부자가 원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을 것이다.
노숙인 개인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것도 보람되고, 필요한 일일 것이다. ‘노숙인다시서기지원센터’에 자신의 시간이나 재능, 돈을 기부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는 노숙인의 자립을 위한 인프라 구축과 더불어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캠페인이나 제도개선활동까지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자발적으로 기부를 시작한 것은 여성관련 문제에 한창 관심이 많을 때였다. 내가 힘을 보탤 방법이 없을까 생각을 자주 했었다. 마침 친한 친구가 한국여성민우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기부 요청을 받게 되었는데 나는 흔쾌히 응했다.
이후 기회가 될 때마다 후원증액을 하거나(물론 사정이 안 좋을 땐 후원 중지를 하기도 했다), 미혼모관련 기관에도 기부를 하게 되었다. 그 뒤 온전한 생활이 어려워진 아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엠네스티란 곳에 기부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부를 하게 되는 주요 계기중 하나는 ‘요청’일 것이다. 가장 좋은 시작은 본인이 관심을 가진 곳의 요청으로 시작해 조금씩 저변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신뢰하는 지인이 아닌, 모르는 곳의 요청에는 즉각 답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부를 요청하는 곳이 신뢰할 수 있는 곳인지 먼저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홈페이지를 통해 그 단체가 적합한 사업을 하고 있는 곳인지, 돈을 어디에 사용하고 있는지(재무재표 및 결산공시), 정식허가를 받은 단체인지, 기부금영수증 발급이 가능한 곳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공익법인이나 지정기부금단체로 등록된 곳은 기부금영수증 발급이 가능하다. 하지만 신생단체이거나, 규모가 작아 지정기부금단체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곳 중에서도 내실 있게 운영되는 곳들도 있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의 기빙코리아 연구에 따르면, 기부할 기관을 인지하는 경로1위는 ‘광고’이다. 모금을 하는 비영리기관들의 성장과 경쟁에 따라 대중홍보에 치중하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여력이 있거나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알고 있는 곳은 채 10여 곳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직 인지도는 낮지만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하는 곳, 그리고 좀 더 힘을 모아주어야 할 단체에 기부를 하는 것이 좋다.
네이버 ‘해피빈’이나 다음 ‘희망해’는 온라인 기반 모금 플랫폼이다. 영역별로 다양한 기관들이 모금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원하는 곳에 소액으로 기부를 시작할 수 있다. 굿펀딩, 텀블벅, 와디즈, 소셜펀치 등 ‘크라우드펀딩’으로 소액기부 후 리워드를 제공하거나 일정 금액을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운영된다.
아름다운재단은 ‘생애주기기부’를 통해 돌, 결혼, 생일 등의 특별한 날 기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돈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풀뿌리 시민단체를 위해 사용된다. 2016년의 시작을 세상을 바꾸는 작고도 커다란 힘, 기부참여로 여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