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마시는 커피, 사이폰 커피

 

추운 날씨에 찬 입김이 나오는 날이면 구수한 향과 따뜻한 온기를 지닌 커피가 간절해진다. 옷깃에 묻은 눈을 툭툭 털어내며 카페의 문을 밀치고 들어설 때 온몸을 감싸는 커피 향기.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본 적 있을 것이다. 눈 내리는 밖과 달리 따뜻한 공기를 머금고 있는 카페 공간에서 사이폰(Siphon) 커피를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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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프에 불이 들어오고 동그란 플라스크 안에서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플라스크에 비스듬히 걸쳐 놓았던 로드(커피가루가 담긴 용기)를 플라스크와 결합하면 이윽고 압력이 작용해 가는 관을 타고 물이 빨려 올라간다. 커피가루가 가득 적셔지면 커피가루와 물을 섞기 시작한다.

거품과 커피, 커피가루의 개층이 선명하게 층을 이룬다. 불을 끄면 관을 타고 내려온 커피가 플라스크를 채우기 시작한다. 짧지만 깊은 여운을 주는 시간, 사이폰 커피 한 잔이 손에 쥐어진다. 경직됐던 몸과 피곤한 마음이 풀리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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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추억의 사이폰 커피

사이폰 커피는 요즘 흔히 쓰이는 추출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1970년대 커피를 즐긴 사람이라면 익숙한 커피이기도 하다. 지금은 에스프레소 추출 방식을 주로 사용하지만 1970년대만해도 커피전문점에서 원두커피를 추출할 때 독일 멜리타드립과 알코올 사이폰 추출 방식을 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손님 테이블에서 보여주지는 않고 주방에서 일본에서 들어온 알코올 사이폰 기구를 사용해 가져다주었다. 그래서 그 시절 원두커피의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것이 사이폰으로 추출한 커피였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사이폰 기구를 사용해 내려진 진한 커피에 테이블 위에 놓인 프리마(크림)와 설탕을 취향에 맞게 타서 마셨다. 맛은 원두향이 조금 더 진하게 느껴지는 믹스커피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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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폰 커피의 재도약

사이폰 커피는 주문 뒤 2~3분 내외로 추출할 수 있어 빠르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추출 시간을 잘 못 맞추면 과다한 열에 의해 쓴맛이 강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사이폰 기구는 고가인데다 유리이기 때문에 깨지기가 쉽다. 또, 청결 등 유지관리에 손이 많이 간다는 단점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이폰 커피는 한동안 인기를 끌다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각종 커피 박람회와 세계적인 커피 대회에서 사이폰 커피의 독특한 추출 방식이 부각되면서 다시 한 번 사이폰 커피가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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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맛뿐 아니라 추출과정을 눈으로 보고 향을 코로 맡을 수 있는 사이폰의 추출방식은 다른 커피를 마실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불빛이 깃든 물방울을 바라보는 것이나 물이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직접 커피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사이폰 커피가 지닌 큰 매력이다.

 
 
 

유럽에서 시작해 일본에서 자리잡기까지

사이폰은1840년경 스코틀랜드의 조선기술자인 로버트네이피어(Robert Napire)가 진공식침전기구를 개발하면서 시작됐다고 전해진다. 1842년 프랑스인바쉬(Madame Vassieux)가 두 개의 둥근 유리관 모양의 사이폰을 개발하고 특허를 내면서 본격적으로 상업화 됐다.

원리는 사이폰과 같지만 형태 면에서 다른 밸런싱사이폰(Balancing Syphon)도 이 무렵 개발됐다. 사이폰은 화려한 외양 때문에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가 높은 커피 추출 기구이다. 당시 유럽인들은 이러한 진공여과 방식의 추출 도구를 배큠브루어(Vacuum brewer)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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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에 이르면서 열과 내구성이 강한 유리가 등장하고, 많은 유리 제조 회사들이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며사이폰 기구는 한층 발전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추출과정 동안 자동으로 열원을 조절하는 장치나 자동차나 배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휴대용 기구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 유럽과 북미에서는 커피메이커를 보편적으로 사용했지만, 서양과의 교역으로 원두커피 문화를 비교적 일찍 받아들인 일본인들은 이 추출방식의 커피를 매우 사랑하여, 사이폰을 더욱 정교히 발전시켰다. 1925년 일본 고노(Kono)사는 위와 아래의 플라스크가 강화 유리로 된 배큠브루어를 사이폰이라고 이름 붙였고, 이후 이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일본의 전통 있는 커피전문점에서는 사이폰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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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즐기는 사이폰 커피

사이폰기구는 천만원 대 이상의 고가 장비도 있으나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휴대용으로 나온 제품들도 시중에는 꽤나 많이 있다. 화력 조절에 주의하고 추출과정을 꾸준히 연습한다면 꽤 괜찮은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사이폰을 이용한 나만의 커피로 우아한 티 타임을 가져보자!

먼저 기본적으로 좋은 맛을 내기 위해서는 갓 볶은 원두를 사용하고, 물을 끓이기 직전에 원두를 갈아야 한다. 물과 원두는 일반적으로 10:1의 비율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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