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 하나 없는 산골 마을의 밤을 알고 계신지? 벌레 소리 하나 나지 않는 새까만 방 안에서 잠을 청하다 보면, 낯설게 느껴지는 고요함에 오히려 잠을 설치는 경우가 있다. 활발한 도시에서 수많은 소음들에 익숙해진 우리의 귀는 오히려 무서울 정도의 고요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곁에서 울려 퍼지는 다양한 소음들 중에서도 오늘은 우리에게 이롭다고 알려져 있는 백색소음에 대해 알아보고 일상생활에 적용된 백색소음의 다양한 쓰임새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백색소음이란?
소음이란 소란스러운(騷) 소리(音)로 보통 우리의 귀에 거슬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가리킨다. 하지만 그런 소음들 중에서도 우리를 크게 방해하지 않는 백색소음(white noise)이 있다. 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자연스러운 소리, 예를 들어 물이 흐르는 소리나 빗소리, 파도소리, 카페에서 사람들이 도란도란 대화하는 소리 등이 백색소음에 속한다. 특정 음높이를 유지하는 컬러 소음(color noise)과 달리 백색소음은 다양한 음과 넓은 음폭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의 소음을 중화시키고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하는데. 실제로 한국산업심리학회에서 실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백색소음은 집중력을 47.7% 향상시키고 스트레스 역시 27.1% 낮춰준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중요한 정보가 오가는 은행, 증권사, 의료 시설 등에 백색소음 설비의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소음 중화 효과로 정보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백색소음 중에서도 고주파가 포함된 TV나 라디오의 잡음은 오히려 귀를 지치게 하며, 저주파의 작은 소음들만이 위와 같은 효과를 보여준다.
울던 아이가 잠들었어요! – 심장박동소리와 혈액이 흐르는 소리와 닮은 백색소음
그렇다면 우리의 일상에서는 어떤 백색소음들이 이용되고 있을까? 예전에 모 프로그램을 통해 알려진 우는 아이에게 진공청소기 소리를 들려주면 잠이 든다는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와 비슷하게 비닐 봉지를 살살 구기는 소리나 엄마의 숨소리, 옷이 스치는 소리 등이 모두 그런 효과를 나타낸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위의 소리들에서 나타나는 백색소음이 태내에서 듣던 심장박동소리, 그리고 혈액이 흐르는 소리와 닮아 있기 때문에 아기가 안정감,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생후 24개월 미만의 신생아에게 효과적이라고 한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아기를 위한 백색소음을 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도 대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부에 집중시켜주는 게 화제 – 다양한 백색소음을 제공하는 사이트들까지 등장
최근에는 업무 회의나 공부를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카페에서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얼핏 들으면 시끄럽고 정신 사나운 카페에서 그런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나 싶기도 한데, 어떨까? 이미 언급되었듯 백색소음에는 집중력 향상 효과가 있다는 것이 연구로 증명된 바 있다. 카페에서의 크지 않은 소음 역시 백색소음에 속하기 때문에 이런 사례들 역시 허황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집중력 향상을 위해 백색소음이 나오는 장소만을 찾아다니기는 너무 번거로우니, 공부나 업무에 도움이 되도록 개인이 이용할 수 있는 백색소음 음원을 제공하는 웹사이트들까지 등장했고 전용 애플리케이션도 판매되고 있다. 동영상 재생 사이트에만 들어가도 손쉽게 백색소음을 재생시킬 수 있다. 독서실이나 학교 등에서도 백색소음 설비를 갖춘 곳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백색소음기 – 편안한 숙면을 위해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는 현대인을 위해 적당한 가격으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백색소음을 발생시키는 전용 스피커와 이어폰도 시중에 나와 있다. 이런 백색소음기를 통해 재생되는 백색소음들이 사람의 두뇌에서 나오는 차분한 알파파를 동조시켜 심신 안정과 수면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효과적이다. 또한 진동을 인식하여 백색소음을 틀어주는 층간 소음 완화용 백색소음기까지, 실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다양한 모습으로 백색소음기가 조금씩 소비자들의 곁에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젊은 층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소리를 들려주어 심신을 안정시켜주는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 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 역시 인기를 끌고 있다. 미용실에서 머리 자르는 소리, 음식 만드는 소리, 귀이개로 귀 청소하는 소리 등 세세한 상황을 설정하여 그 소리를 들려주는 것인데,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정도의 부드러운 소리 그리고 해당하는 상황에 대한 기억을 함께 불러일으킴으로써 심리적인 안정감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것으로 이 역시 백색소음의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도 많은 종류의, 갖가지 소음에 둘러싸인 채 굴러가는 도시의 삶 속에서, 백색소음은 우리에게 작은 평화를 찾아줄 수 있다.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는 소음들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손안의 스마트폰을 켜서 백색소음을 재생해보는 게 어떨까? 의외로 쉽게 평온함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