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다. 개인이 가져야 할 여유를 희생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참아가면서 지쳐 쓰러질 때까지 일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고 일상에 충실하며 빡빡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해 마련한 돌파구, ‘페이크슈머’ 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진짜를 대체하는 가짜
페이크슈머(Fakesumer)는 가짜(fake)와 소비자(consumer)라는 단어가 합쳐진 신조어다. 현실적으로 ‘진짜’를 즐길 만한 여건이 되지 않기에, 그와 똑같지는 않더라도 유사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가짜에 투자하는 소비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꽤나 오래된, 소위 ‘짝퉁’ 명품들을 구매하고 소지하는 사람들 역시 이에 포함된다. 진짜 명품을 소비할 경제적 여건이 마땅치 않으므로 모조품을 구매하면서 어느 정도 그에 대한 만족감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경제적 여건뿐 아니라 바쁜 일상으로 인해 시간적인 여건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보니, 보다 체험적인 성격을 띠는 페이크슈머 문화 역시 발달하고 있다. 주말에 짬이 나지 않아 캠핑을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작은 텐트를 베란다에 펼쳐 두고 기분을 내거나, 혹은 캠핑장과 비슷하게 꾸며놓은 레스토랑 등에서 바비큐를 먹으며 실제로 캠핑을 온 것 같은 느낌을 즐기는 것이다. 실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이와 같은 대체재로서의 체험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떻게 즐기고 있나?
위에서 예시를 든 것처럼, 명품 브랜드의 모조품을 들고 다니며 어느 정도의 만족감을 얻는 문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외식, 예술, 여행,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이와 비슷한 페이크슈머 문화가 등장하고 있다. 아웃도어를 주제로 한 레스토랑은 물론 유럽의 여행지처럼 꾸며진 카페나 식당 등에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이들은 보다 현지에 가깝게, 보다 ‘리얼’하게 그 나라 특유의 분위기를 구현할수록 더 찬사를 받고 인기를 끈다. 그 외에도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로 고급 레스토랑의 맛을 내는 법, 만드는 데 오랜 정성이 들어가는 음식의 맛을 생각지도 못한 조합으로 재현할 수 있는 법 등이 TV와 SNS 등의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소개되며 사람들의 반향을 이끌어내고 있다.
또한 영화관에서도 그냥 영화가 아닌, 유명 가수의 콘서트나 비싼 표의 해외 공연 영상들을 상영하고 있어 시간 상, 여건 상 공연장을 찾을 수 없는 관객들에게 실제로 공연장에 가있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체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여가와 관련한 거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페이크슈머 문화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라나고 있다.
하나의 트렌드가 된 페이크슈머 문화
이런 페이크슈머 문화가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역시 시간과 돈이라는 현실의 문제들이 있다. 미디어 매체는 물론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전 세계의 새로운 정보들이 전달되는 속도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빨라졌다. 예전에는 몰라서 할 수 없는, 누릴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면, 이제는 누구나 이 세상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내가 누릴 수 있는 어떤 좋은 것들이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몰랐을 때에는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알게 되고 나니 나도 남들 못지않게 즐기고 싶고 누리고 싶다는 욕구가 피어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자신의 처지에서 가능한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고, 그걸로 어느 정도의 위안을 얻으며 만족한다.
또한 가상현실, 증강현실 기술이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대중화되어가고 있는 추세 역시 페이크슈머 문화의 성장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 현실이 아닌 것을 현실인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가상현실 기술이, 진짜가 아닌 것으로 진짜 같은 체험을 하게 해주는 페이크슈머 문화와 겹쳐지는 부분이 컸고 기술과 문화 트렌드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지금처럼 페이크슈머 문화가 하나의 대세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마도 가까운 미래에는 가상현실 기기를 통해 여행지를 관람하거나 공연을 관람하고, 심지어는 놀이기구를 타거나 비싼 장비가 필요한 스포츠도 가볍게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페이크슈머 문화가 사람들의 일상 속에 완벽하게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대리만족’이 가지는 한계
페이크슈머 문화를 한 단어로 정리하면 바로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의 경험을 관찰하며 만족을 얻는 대리만족과는 조금 다르지만, 실질적인 경험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며 만족을 얻는다는 부분에서 대리만족이라 부를 수 있다. 이런 대리만족이 가지는 한계는, 결국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스마트폰으로 열심히 검색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요리를 하고 집에서 제일 예쁜 그릇 위에 올리고 사진을 찍어도, ‘이게 과연 진짜 레스토랑에서 먹는 맛일까?’하는 의문은 해결될 수가 없다.
페이크슈머 문화로 대변되는 모든 가짜 체험들이 다 그렇다. 진짜를 경험해보기 전까지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이 가슴속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인간관계까지 가짜로 체험하는 일부 페이크슈머 문화는 더 문제가 심하다. 스마트폰 화면으로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 이차원의 아바타, 혹은 연예인이 나와 대화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준다는 것이, 절대 실제 사람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고 순간적으로 현실과의 괴리감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게 될 가능성이 있다. 남들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싶어 선택한 소비가, 오히려 나는 절대 남들처럼 될 수 없다는 현실감을 일깨워주며 커다란 상실감을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소수의 기형적인 페이크슈머 문화를 제외하고는, 페이크슈머 문화만이 갖는 장점은 분명 있다. 해보지도 않은 경험을 페이크슈머 문화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재현하는 정도라면, 과거 캠핑을 하면서 느꼈던 여유와 즐거움을, 유럽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설렘을 그와 비슷한 곳에서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지친 일상에 휴식으로 그 문화를 누릴 수 있다면 삶의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페이크슈머 문화를 통해 실질적으로 충족되는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기 때문에, ‘지금은 이 정도의 간접 체험밖엔 할 수 없지만, 언젠가 꼭 해봐야지!’하는 식으로 커다란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하는 역할은 충분히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경험한 후에 페이크슈머 문화가 그 경험을 재현하는 도구로서 다시 그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처럼 이용자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페이크슈머 문화에 따른 새로운 경험들, 상품들은 충분히 우리에게 긍정적인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다. 현명하게 이런 문화를 즐기고 이용한다면 페이크슈머 문화는 분명히 우리에게 그 나름의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