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고기를 귀하게 여겼던 우리 민족은 그만큼 고기를 아주 섬세하고 정교하게 다루어 왔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고기 중 버리는 부위가 없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그리고 그런 육식 문화는 지금까지 이어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고기를 향한 특별한 애정을 안겨주었다. 오늘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고기 외식 메뉴를 살펴보며 어떻게 그들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뿌리 깊은 특별식, 설렁탕
조선시대, 소들은 사람보다 귀한 취급을 받았다. 벼를 키우는 데 적합한 몬순 기후를 토대로 완전한 농경사회를 이루었던 과거의 우리나라에서, 농사에 큰 도움을 주는 소를 식용으로 쓴다는 것은 굉장히 사치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소고기가 선사하는 특유의 육향(肉香)은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비록 누구나 원하는 만큼 먹지는 못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인기 있는 육류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런 귀한 소고기가 주어지는 몇 안 되는 특별한 날들에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 한 마리의 동물로부터 최대한의 맛을 이끌어내어 즐기고자 노력했다. 그런 노력의 결과 다른 나라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독창적이고 세밀한 소고기의 취급 방법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소고기를 귀하게 여겼으니 양반들에게 주어졌던 정육(精肉)을 뺀, 머리부터 꼬리에 이르는 뼈와 살 전체를 가능한 한 남김없이 섭취할 수 있는 국물 음식이 서민들 사이로 대중적으로 발전할 수밖에 없었고 그 오랜 문화가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설렁탕과 곰탕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설렁탕은 1920년대 서울에서 성황을 이루었는데, 당시의 신문에서도 서울의 설렁탕에 관한 기사를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만큼 대중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다. 먼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고기를 섭취해오던 방식과 가장 닮아 있는 설렁탕은 우리나라의 대중적인 고기 외식 문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음식이다.
밤에는? 치킨
196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는 일본에 수출하기 위해 닭을 키우기 시작했다. 양계산업이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많은 수의 양계장과 도계장이 대구,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몰려 있었고, 닭고기의 물량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공급되었다. 거슬리는 맛이 적고 담백한 닭고기는 금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61년, 명동에서 ‘명동영양센타’가 문을 열어 최초로 전기구이 통닭을 선보였고 이 통닭은 가게의 이름과 같이 영양식, 특별식으로서 중산층의 사람들로부터 크게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970년대 양계 산업이 폭발적으로 발전하면서 닭고기는 완전히 우리의 일상 속에 자리를 잡았고, 그와 함께 1971년 ‘해표 식용유’가 출시되면서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치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식용유의 대중화가 닭고기의 초과 공급과 맞물려 전국적으로 튀긴 통닭을 대세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때에 처음 나타난 것이 바로 가마솥에서 튀긴 시장 통닭이다. 지금도 각 지역의 전설적인 맛집으로 남아 있는 몇몇 가게에서 이와 같은 가마솥 통닭을 맛볼 수 있다. 그 후 외국의 프랜차이즈의 영향을 받아 대학가를 중심으로 조각낸 프라이드치킨이 유행하다가, 1982년 ‘페리카나’에서 양념치킨을 최초로 선보인 뒤로는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양념 반, 프라이드 반’ 시대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간장치킨, 마늘치킨, 오븐치킨, 숯불 바비큐까지 개성도 다양한 수많은 치킨들이 매일 밤 우리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지친 하루를 달래주는 삼겹살
많은 사람들이 ‘고기’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삼겹살. 하지만 삼겹살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고기를 찜 혹은 국으로 조리해 먹었고, 음식에 들어가는 정성을 중요하게 여긴 탓에 양념하지 않은 고기를 구워 먹는 일도 거의 없었다. 또한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를 훨씬 선호했으며 그중에서도 삼겹살은 지방이 너무 많아 잘 찾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돼지고기를 향한 이런 천대는 1970년대 이전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1971년 돼지고기가 일본과의 수입 자유 품목으로 지정되면서 우리나라에서 대규모 양돈 사업이 번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머리와 내장 등 돼지의 부산물에 대한 수요가 없었으므로 자연히 수출이 불가능했던 돼지고기의 특수부위가 남아돌았고, 삼겹살 역시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경제적 배경을 바탕으로 도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값싼 삼겹살을 구워 먹는 외식 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그 후 1980년대에 접어들며 돼지고기의 소비량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즈음부터 삼겹살이 대중화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IMF를 거치며 저렴한 가격으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준 삼겹살은 마침내 온 국민이 사랑하는 ‘국민 고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기를 즐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고기’들은 여유를 찾아 변화해가는 사회의 풍경과 맞물려 아직까지도 급속도로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최근에는 외국의 식육 문화도 많이 전해지면서 스테이크는 물론 웻에이징, 드라이에이징과 같은 숙성육도 큰 인기를 끌고 있으며, 계속 사랑받아온 치킨과 삼겹살 등도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미각을 충족시켜 줄 즐거운 고기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맛과 영양소로 우리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고기. 우리가 이렇게 고기를 찾는 것은 고기가 그만큼 우리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