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음식점에 와인 추천 전문가인 소믈리에(sommelier)가 있듯, 우리나라 식품업계에도 채소나 과일의 생산·유통·가공·요리 전반을 품평하는 ‘채소소믈리에’가 등장했다. 채소소믈리에는 좋은 채소와 과일을 고르는 방법에서부터 저장·유통·조리법에 이르기까지 채소와 과일에 관련된 지식을 학습하고, 그 맛과 즐거움을 이해해서 전달하는 전문가이다. 소비자와 생산자가 보다 건강한 채소와 과일 선택과 재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 방법을 연구하는 국내 1호 채소소믈리에 김은경 씨를 만나 채소소믈리에의 역할, 현재 우리에게 채소소믈리에가 필요한 이유 등에 대해 들어본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요리연구가이자 사단법인 한국채소소믈리에협회 협회장 김은경입니다.
Q 채소소믈리에는 어떤 직업인가요?
채소와 과일에 대한 전문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채소, 과일에 대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 이상의 장점과 가치에 대해 연구하고 있어요. 또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건강한 식생활을 지키는데 있어서 채소와 과일의 역할을 알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정말 중요한 시대입니다. 채소는 오랫동안 건강을 유지하는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고요. 또한 채소는 우리와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채소소믈리에가 매력적인 직업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Q 채소소믈리에가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일본이 채소소믈리에 과정을 처음 시작한 것은 대략 14년 정도 된 것 같아요.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역할을 하는 유통업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유통만 할 뿐 채소, 과일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던 그들에게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 것입니다. 이후 내가 먹는 채소, 과일의 생산, 유통 과정들을 궁금해하는 일반인들도 이 과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일본의 채소소믈리에가 생겨나게 된 것이죠.
Q 국내 1호 채소소믈리에이십니다. 채소소믈리에가 된 계기와 우리나라에 채소소믈리에가 생긴 과정이 궁금합니다.
제가 요리연구가로 활동하면서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건강하게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식재료가 건강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런 과정에서 지인의 소개로 채소소믈리에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도대체 채소에 어떤 가치가 있기에 이러한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있지?’라는 궁금증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채소소믈리에의 모든 과정을 수료했는데, 운이 참 좋았던 것은 일본 협회에 문의했을 당시 많은 도움을 주시더라고요. 다른 나라 사람이 자신들의 이러한 프로그램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 신기했던 것 같아요. 마침 그곳에 한국 직원이 계셔서 제가 배울 교재를 다 번역해주시기도 했고요. 수업을 들으려면 언어를 알아 들어야 하는데 혹시 통역하는 분을 함께 데리고 수업을 들어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허락해 주시더라고요. 덕분에 편하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제가 채소소믈리에 과정을 듣고 한국에 돌아왔는데 저처럼 채소소믈리에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모두 저처럼 일본에서 수업을 들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일본 협회와 협의를 통해 한국 과정을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일본과는 과정이 조금 달라요. 왜냐하면 일본의 기후나 토양 등 지역적, 생활적 조건이 우리나라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죠. 현재 우리나라 환경에 맞춰서 채소소믈리에 과정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Q 현재 채소소믈리에들은 어떠한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또, 채소소믈리에와 관련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채소소믈리에 자격 인증을 받은 분들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의사, 요리연구가, 생산자 등 많은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의 역할에 따라 채소소믈리에로서 활동할 수 있는 범위와 영역이 달라집니다. 의사들은 자신의 환자에게 맞는 건강한 채소를 추천할 수 있고요. 요리연구가는 제철에 맞는 건강한 채소로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생산자분들은 채소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나 조건을 만들어 건강한 채소를 생산할 수 있고요. 그 역할은 무궁무진합니다.
채소와 과일은 생산자, 환경 등 다양한 것들에 영향을 받아 맛이 모두 달라요. 예를 들면 같은 당근이어도 동네 마트에서 파는 당근과 시장에서 파는 당근의 맛이 다르니까요. 채소소믈리에가 이러한 모든 조건을 알고 맛을 구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이는 너무도 다양해서 힘들죠. 모양을 보고 어떠한 환경에서 자랐을 거라고 아는 분들도 계시긴 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요. 가끔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섭외 전화가 옵니다. 당근을 맛을 보고 어떤 지역에서 어떤 생산자가 재배한 것인지 맞출 수 있는 분이 있냐고 말이죠. 이런 분이 계시다면 저도 정말 만나고 싶네요.(웃음)
Q 채소의 매력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채소는 변화가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같은 채소라도 생산 시기, 산지에 따라 맛, 모양 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채소는 자연에 속해 있어요. 자연에서 채소라 자라며 사람도 물론 자연에 속해 있습니다. 제철 채소가 가지고 있는 영양은 사람이 그 계절에 필요한 영양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이런 것들을 보고 저는 채소가 살아 있다고 얘기하곤 합니다. 요즘은 먹거리가 넘치기 때문에 가려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내 몸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을 먹어야 하는데 아무거나 먹었다가는 질병이 올 수 있고 몸에 이상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자연에 속해 있는 제철 채소, 과일이 가장 좋은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Q 6월 제철 채소는 무엇인지, 그리고 잘 고르는 법을 소개해주세요.
6월은 오이가 가장 맛있을 시기입니다. 우선 외관상으로 상처가 없고 매끈한 것이 좋은 채소입니다. 오이 같은 경우에는 돌기 부분에 가시가 있는데요. 가시 부분이 따끔따끔하지 않으면 재배한지 오래되고 유통과정이 길어진 오이입니다. 또한 꼭지 부분이 마르지 않아야 하고요.
이제 곧 여름인데 수박 잘 고르는 팁을 드리자면, 꼭지 부분에 솜털이 남아 있는 것이 있어요. 과일은 숙성이 되어야 맛있는데 그 솜털이 남아 있는 것은 아직 덜 숙성된 것이죠. 꼭지가 마르지 않고 초록색이 짙은 것은 기본으로 봐주시고 꼭지의 솜털을 유심히 보시기 바랍니다.
Q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채소에 대한 상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유기농 채소가 무조건 좋다고 말씀하시고 유기농 제품은 씻지 않고 그냥 먹어도 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유기농 채소에 약을 쓰지 않는 대신 미생물들이 있을 수 있어요. 모두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미생물이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꼭 세척을 깨끗이 해서 드셔야 합니다.
Q 채소소믈리에의 역할이 커지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까요?
건강한 나라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나를 위해서 내가 건강하게 내가 좋은 것을 먹고 싶어서 시작했지만 다른 사람, 내 가족, 친구들에게 알리게 되다 보니까 내가 변하고, 주변, 사회 등 모든 것이 변화되는 거죠. 더불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채소소믈리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채소소믈리에로서 독자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다’라는 것을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좋은 것을 먹고 내가 건강해야지만 다른 사람들도 건강을 챙길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고 한 끼를 먹더라도 건강한 채소, 과일을 꼭 함께 드셨으면 좋겠고요. 우리 몸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영양소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인데 이것들이 제대로 된 작용을 하기 위해서는 비타민, 무기질 등이 필요하죠. 그런 것들이 바로 채소입니다. 특히 나이 드신 분들은 오히려 건강을 챙기신다고 골고루 채소를 드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20~30대 분들이 문제가 되죠. 아직 젊으니까, 바쁘니까 등의 핑계로 식사를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하루에 채소를 한 접시도 못 먹는 경우가 많아져요. 지금부터 챙겨 먹어야 건강한 몸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러한 건강한 가치를 주변 사람들에게도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About 김은경
일본 베지터블앤프루츠 협회의 채소 소믈리에 과정을 이수한 ‘국내 1호 채소소믈리에’이자 사단법인 한국채소소믈리에협회 협회장이다. EBS 「최고의 요리비결」 KBS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 방송을 통해 건강요리를 소개하고 있으면, 문화센터 등 다양한 기관에 출강 중이다. 「여성조선」, 「우먼센스」, 「레이디경향」, 「레몬트리」, 「에센」, 「쿠켄」 등의 잡지에서도 그녀의 칼럼과 레시피를 만날 수 있다. 현재 쿠킹노아 요리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가족 건강을 위한 요리를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1년 열두달 행복요리』, 『채소로 COOK해』, 『자연주의 샐러드 40가지』, 『럭셔리 샌드위치』, 『실패 없는 요리 백과』,『3040 레시피』, 『짜지 않은 국 찌개』 등이 있다.